[말죽거리 잔혹사] 유신 말기에 들려오는 교실 이데아

영화감상평

[말죽거리 잔혹사] 유신 말기에 들려오는 교실 이데아

G 이덕형 0 9049 87
교육부의 힘과 재단의 힘이 엇비슷하여 공교육과는 약간 거리가 있던, 따라서 규율이 꽤나 엄격했던 사립 고등학교(그것도 남고)를 다니던 그 시절. 주말 낮 TV에서 방영되는 석래명 감독의 얄개 시리즈를 보면서 여학생과의 애틋한 교제와 솜사탕같이 달콤해 보이는 교실 분위기를 부러워 한 적이 있다. 그 영화들이 만들어진지 십 수년이 더 지난 그 당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여전히 학년 간 서열이 명확했고, 선생님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무기(?)로 개성을 드러내기 일쑤였다. 하키 라켓으로 엉덩이에 프로스펙스 로고를 찍어주시는 분, 카세트 플레이어의 전선을 손에 감아 채찍처럼 부리시던 분, 빨래 방망이를 곤봉처럼 신들리게 돌리시던 분, 전국체전 유도 금메달 출신으로 아이들을 상대로 기절과 소생을 반복하시던 분, ‘삼층’에 위치한 교실에서 받은 처절한(?) 기합덕분으로 ‘삼층 교육대’라는 별칭을 만들어내신 분 등등 경쟁적으로 독문 무공을 익히시기에 여념이 없던 선생님들이 떠오른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남자는 당당해야 한다며 겨울철 교복 주머니를 죄다 꼬매 버리라는 학칙을 내리시고, 교련시간을 이용해 목봉 체조를 시켰다는 교장 선생님이 은퇴하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에서 느꼈던 자상함과 중학교에서 느꼈던 훈훈함 보다 고등학교에서는 터프함을 느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생존(!), 오직 그것이 중요한 과제요 목표요 관심사였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다..) 하여튼 화면 속 그들이 공원에서 연인과 함께 솜사탕을 녹여먹고 있을 때, 난 방구석에서 라면과 함께 김치를 씹으며 설익은 머리로 이런 생각을 했었다. ‘니들은 정말 행복하니?’라고..


018413m2.jpg반면에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는 분명 얄개시리즈와는 다른 학교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다. 일단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잔인하고 포악하다는 뜻의 ‘잔혹’이란 단어는, 말이나 하는 것이 까다롭고 얄미운 사람을 뜻하는 ‘얄개’와는 자간에서 느껴지는 질량부터가 차이가 난다. 1970년대라는 동시대를 담고 있음에도 이러한 시각차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유신의 폭압 속에서 당 사회의 축소판이자 사회를 바라보는 비젼이 되어주는 학교를 비판하는 것이 사실상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얄개 시리즈로 대표되는 당시의 학원물은 ‘학교는 학우들 간에 정이 넘치고, 사제간에 사랑이 피어나는 도원경’ 정도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유하 감독은 여기에 일침을 가한다. 언제부터 우리들의 학교가 낭만의 공간이었던가. 박정희씨가 이루어 냈던 가파른 경제발전의 과정만큼이나 치열한 경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오직 일등만이 살아남고 추앙받는 일등 제일주의 이데올로기 속에서 원대했던 꿈은 잊어버린 채 어느새 점수의 노예가 되어버린 학생들. 그리고 (적어도 영화속에서는) 그들을 훈육하는 교사들마저 군사독재의 가신이 되어있는 그런 공간이 어찌 낭만적일 수 있는가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문열씨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학교를 절대권력의 상징인 엄석대라는 캐릭터를 내세워 사회상을 꼬집고 있듯이, 유하 감독은 그 연장선상에서 학교를 빗대어 현식(-권상우)과 우식(-이정진)의 모습으로 다시 한번 비판의 핏대를 세우고 있다.


018413m10.jpg이러한 시각으로 보면 영화는 명백하게 다가온다. 현수가 전학을 간 정문고는 철저하게 당시 사회를 비추고 있다. 태극기를 꽂은 검은색 대형 승용차가 교문으로 들어설 때 평교사들과 학생들이 각잡힌 자세로 외치는 경례구호는 다름아닌 ‘충성’(도대체 무슨 충성을 하자는 것인지..)이고, 동급생임에도 선도부 완장을 차고 있는 종훈은 절대권력을 등에 업은 공권력의 상징이다. 교사들은 늘 학생을 부를 때 ‘반등수를 깎아 먹는 놈’ 내지는 ‘만년 꼴찌’라 하고, 심지어 우열반을 만들어 경쟁을 부추긴다. 갑갑한 학생들은 고고장이나 도색잡지 그리고 넘치는 에너지를 스스로에게 충돌(막싸움)시키는 등 일탈을 꿈꾸지만 힘껏 던져도 결국은 돌아오는 부메랑처럼 그들은 학교를 돌아와 혹독한 매질을 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현수가 꺼내보는 ‘절권도의 길’ 그리고 이소룡은 자유의 상징이다. 일대 多의 싸움에서도 결코 주눅들지 않고 겨루는 용기와 무도계에서 사도의 무술이라고 천시를 받지만 스스로 일가를 이룬 이소룡의 모습은 그가 홀로 서야만 하는 학생들의 우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소룡이 내지르는 포효는 자유를 향한 시위대의 함성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유하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서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욕심을 마음껏 부리고 있는 듯하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요 근래에 개봉되었던 <클래식>과 <친구>를 비롯한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줄뿐더러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같은 사회에 대한 비판가지 다양한 옷을 입고 있다. 하나의 영화에서 여러 가지의 색을 경험한다는 것은 분명 가치있는 일지만 동시에 아쉬운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나치게 특정배우를 부각시킴에 따라 영화가 가지고 있는 진지한 의미가 배우의 멋진 근육과 액션에 파묻혀 희석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점이다. TV드라마를 통해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배우를 캐스팅해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에는 성공한 듯 보이지만,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정작 뒤로 밀려난 듯한 느낌 때문에 안타깝다.


이소룡의 쌍절곤과 진추하와 ABBA의 음악, 고고장과 떡볶이 집의 DJ까지 이제는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당시의 ‘학생’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소재에 따가운 일침까지 잊지 않은 <말죽거리 잔혹사>. 이제 서울 하늘에서 1978년의 별빛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했지만 기억저편에서 이소룡의 그 ‘포효’는 학생들의 마음 속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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