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만찬] 관객들과의 거리는 멀기만 하구나

영화감상평

[최후의 만찬] 관객들과의 거리는 멀기만 하구나

G 이덕형 0 6733 91
남자 둘과 여자 하나. 나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영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캐릭터 구성이라는 점에 주목해본다. 이 세 명의 조합에서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꺼리는 꽤 다양하다. 세 명의 끌고 당기는 애증의 삼각관계는 이미 TV드라마의 진부한 단골 소재가 되어 버렸고, 여기에 덧붙여 세 명이 팀을 이뤄 보다 발전적인 일을 하는 경우(예를 들자면, <밴디츠>- 남녀 혼성 은행털이단의 활약이 돋보인다)도 있다. 그리고 <고래사냥>에서처럼 우여곡절 끝에 만난 소심한 청년 [병태(김수철)], 거지꼴을 하고 있으면서도 항상 당당한 [민우(안성기)], 벙어리 처녀 [춘자(이미숙)] 이 세 사람의 자아 찾기 여행을 담은 경우도 있다. 또 잃어버린 아기를 찾던 삼류 인생들의 이야기를 담은 <3인조>도 있었다.


이 대열에 또 한 편의 영화가 합류하게 되었다. 오는 11월 14일에 개봉을 앞두고 있는 <최후의 만찬>이 바로 그 영화. <최후의 만찬>은 각자 너무도 다른 삶을 살던 세 사람이 어떻게 만나게 되는지 그 과정을 보여주며 시작을 한다. 사랑하는 아내, 아내의 뱃속에 든 자신의 아기를 스스로 죽였다는 죄책감에 술로 하루를 보내며 자살용(?) ‘복어독’을 가슴에 품고 다니는 [세주]. 고향에 홀어머니를 남겨둔 채 상경해 건달 생활을 하다가 우연찮게 패싸움 도중 상대 조직 보스의 다리를 찌르고 쫓기는 신세가 되어 ‘차라리’라는 심정으로 생명보험을 가입하고 자살하기 위해 도로 한복판에서 고군분투하는 [곤봉]. 카드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있고, 난치병에 걸렸다는 선고에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재림]. 이 세 사람은 우연찮게 [세주]의 아파트에서 동거를 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그들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최후의 만찬>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발견하는 삶의 의미와 ‘그래, 세상은 그래도 살만하잖아.’ 라고 말한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뒤에 다른 사람에게 한 말을 엿들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분명 감독과 영화가 던져준 메시지의 수신자는 ‘나’일 텐데 말이다. 옆집 주소가 적힌 편지를 잘못 뜯어 본 기분이 드는 것은 아마도 몰입하기 쉽지 않은 이 작품의 완성도 문제라는 생각을 해본다.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척박한 현재를 사는 안타까운 세 사람의 이야기는 다분히 드라마적인 요소이고, 예기치 않게 터져 나오는 등장인물의 대사와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코미디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시선을 잡아끄는 리얼한 격투씬은 액션의 요소까지 가미한다. 그러나 이런 매력적인 배합은 한데 섞이지 못하고 불협화음을 낸다. 비빔밥을 비비지 않고 먹으려 할 때 느껴지는 당혹감이랄까. 코끝이 찡해질만한 장면에서 생뚱맞은 대사로 손수건을 꺼내려 하던 손을 머쓱하게 만들고, ‘이정도면 웃겠지’하듯 친절한 유머앞에서 폭소보다는 쓴웃음을 머금게 된다. 오죽했으면 1시간 40분이라는 러닝 타임 중에 10분을 잘라 뮤직 비디오를 만들었다면 보다 짜임새있고 흥미있는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을까.


<최후의 만찬>은 별다른 특수효과도 웅장한 스케일도 요구하지 않는 영화이기에 배우들의 비중이 여느 영화보다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TV 멜로드라마에서 주로 활약해온 [이종원]씨가 은막의 부진을 떨쳐내고자 비장한 각오로 임한 이 작품에서 그는 한껏 무르익은 연기를 보여준다. 건달로써의 느끼하고 엉큼하고 단순무식한 모습과 불효한 아들의 모습을 넘나드는 연기는 그동안 관객들의 눈물샘만을 공략해오던 기존의 멜로 연기와는 분명 차별되는 모습이다. 그러나 [세주]역의 [김보성]씨는 연기를 보고 있노라면 자꾸만 실망하게 된다. 슬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고인 채 국어책을 읽듯이 또박또박 대사를 치는 그의 모습에 덩달아 눈물을 흘려줄 관객은 없을 것이다. 기존의 코믹하고 터프한 연기에서 멜로 연기로의 변신을 시도한 그는 관객들의 눈물을 빼기 전에 어깨에 들어간 힘부터 빼야할 형편이다.


그런데 이런 치명적인 급소를 지니고 있는 <최후의 만찬>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작품은 올해 개봉한 <바람난 가족>, <아카시아>같은 영화들이 초점을 맞추고 있던 ‘가족의 해체’와는 상반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가족을 망쳐버렸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세주]가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곤봉]과 [재림]을 만나 가족을 구성하여 서로 보듬고 배려해주는 모습은 오히려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밖에도 주연배우의 뒤를 받쳐주는 반가운 얼굴들이 있어 눈을 즐겁게 한다. 술집 주인으로 영화 초반에 모습을 드러내는 [안문숙]씨, [곤봉]에게 칼을 맞는 조직 보스 역의 [홍수환]씨와 [곤봉]이 속한 조직의 보스이자 비굴한 모습을 보여주는 [선우재덕]씨 그리고 의사 중 한명으로 출연하는 코미디언 [김창준]씨를 찾는 것은 <최후의 만찬>의 잔재미이다. 또 다른 볼꺼리 중에 하나는 주인공들의 이름과 그들의 행동의 닮은 점이다. [세주]의 성은 ‘백’. 그래서 그런지 그가 즐겨 먹는 술은 ‘백세주’고 건달 [곤봉]이 싸움에 쓰는 무기는 다름 아닌 칼날이 삐죽 나와있는 ‘곤봉’이다. 그리고 이들 세 사람이 만나기 전 우연히 편의점 테이블에 나란히 서서 먹기에 열중인 장면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인 [최후의 만찬]의 예수와 11명의 제자의 모습과 어딘가 모르게 닮아있다. 영화제목이 다시 한번 떠오르는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빛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최후의 만찬>. 영화 자체의 빈약한 완성도라는 내부적인 악재와 더불어 세계적인 히트작 <매트릭스>의 개봉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개봉일을 비슷한 시기에 잡아 외부적인 악재까지 겹쳐 흥행에 먹구름이 가득해 보인다. 시작부터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는 이 작품이 끝까지 관객들과 평행선을 그으며 달려갈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 게시물은 再會님에 의해 2009-08-23 02:10:14 씨네리뷰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再會님에 의해 2009-08-23 02:12:43 특집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再會님에 의해 2011-07-11 05:43:54 씨네리뷰에서 이동 됨]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신고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