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의 느낌…카불익스프레스

영화감상평

내 친구의 느낌…카불익스프레스

1 흰곰 7 2703 23
우리 둘째 아들이 그리 심하지 않은 폐렴으로 입원한 적이 있었다.
누가 입원한 경험이 없었기에
더구나 자식이 그렇게 되어서 마음이 매우 무거웠었다.
하지만 금방 회복됐고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인 우리 둘째 아들이
병원환경 적응을 넘어 관광의 자세를 가질 무렵엔
우리 마누라까지도 그 묘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6인실 병동의 구성원은 각기 사는 모양이나 성격이 달랐지만
비슷한 연령대의 쬐끔 아픈 아이의 엄마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밤낮
모양만 환자인 애기들을 데리고 같이 생활한 그들은
식사준비 및 가사노동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만끽하며
온갖 사는 이야기를 재료로 한없는 수다의 향연을 펼쳤다.
성격 좋은 우리 마누라는 주업무인 아이 병간호로 인한
피로감보다는 새벽 3시까지 이어지는 지나친 친교를 통한
입술 터짐의 부상까지 얻어 아이의 병세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까지 하는 불상사를 만들었고,
예쁜 외모와 달리 까칠한 성격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게 하던
놀라운 자기관리 사나이 우리 막내 아들이
병원 내 모범 어린이 환자상을 수여 받을만한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퇴원 날 집에 가지 않겠다고 때를 부려 병원 관계자를 기쁘게 한
웃지 못할 요상한 시추에이션을 연출했다.
아무튼 우리 아들의 입원으로 우리 마누라는 친구를 한 명 더 사귀었고
난 그 식구들과 여러 번의 식사를 했으며,
우리 아들들은 크리스마스와 어린이 날 선물 각출 대상 목록을 늘였다.

살아온 인생이 각기 다르고 직업과 생각이 달랐지만
비슷한 상황과 같이 자고 먹는 생활이 주는 친밀감
그 때 그 입원실에서의 그 감정은
남자인 나도 빠질 만큼 힘이 있었다.

로드무비라 할 수 있는
“카불 익스프레스”보면서 그 감정을 느꼈다.
주인공이 도대체 누구인지 난해한 이 영화 속
다섯 명이 동행하는 이틀간의 여정에서
그 느낌과 똑 같은 향내를 맡았다.
원하지도 예기치도 않았던 상황에서 만난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다른 인종의 사람들이 느끼는
인간으로서의 동질감과 이해를 잘 살린 이 작품은
동네사람 같은 배우들과 소박한 화면
귀여운 총격씬과 집 안마당 같은 스케일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이상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 영화를 더 재밌게 보는 방법.
제3세계의 영화라 무시하고 봐줘라.
초반은 기대대로 흘러가나
끝난 후엔 예상치 못한 재미와 감동을 받을 것이다.

카불 익스프레스
촌스럽고 볼품없지만
보증 서 달라면 서 줄 수 있는 진실을 가진 친구의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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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omments
1 께봉이삼촌  
  제가 자막을 만들었던 영화에 대한 평이라 안볼수가 없었습니다.

"동네사람 같은 배우들과 소박한 화면
귀여운 총격씬과 집 안마당 같은 스케일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이상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영화가 주는 그 느낌을 제대로 끄집어 내어 표현하신것 같습니다.
1 밤의불나방  
  정말 오래 간만에 로그인 하게 만드는 재밌고 참신한 감상평 이내요.

요즘 올라오는 많은 감상평들이...보고난 후에 느낌을 마음으로 적는다기 보다는...
감상평을 쓰기 위해서 억지로 영화를 보고 쓰는 것처럼 무미 건조한 글들이 많습니다.

특히...흥행이나 개봉작 위주에
전부 똑같은 영화들의 감상평만 지겹게 올라오고...
자신들이 영화 비평가들인냥...차갑고 냉정한 글들로 가득 하더군요.

반면에...
흰곰님에 글은 따듯 하면서도 가식적이지 않아서 참 정겨운 글 이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에 일상을 영화와 절묘하게 빗대어 참 재밌었습니다.

흰곰님에 신선한 영화 추천 정말 감사 드리며...
앞으로 흰곰님에 감상평 처럼...
따뜻한 글들이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습니다.
1 유프린스  
  다른 감상평들도 하나같이 포근함이 묻어나네요 ㅋ 글쓰시는 분이신가;;;;;; 처음엔 제3세계영화고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지루할줄알았는데, 얼~~~웬만한 영화 구석에 집어던질정도로 깔끔하니 정말 맛깔나게 잘 만들었네요
1 이환용  
  오랜만에 흰곰님 감상평 잘읽고갑니다.. 역시...^^
1 은행나무침대  
  꼭 보고 싶군요...
1 無念無想覇刀  
  다른 말이 필요없네요.....봐야겠다는 생각밖에는....
1 흰곰  
  고맙습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