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연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영화감상평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연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1 ROCK 3 2789 11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연가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1986년.
나는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담배를 배웠고 해태 타이거즈 선동열은 24승을 올렸다.
500원짜리 커피 한 잔에 디제이가 LP 디스크를 돌려주던 음악다방이 마지막 전성기를 보냈으며
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핀컬 머리의 반항아들이 여고생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시절.
자유를 외치던 대학가 지붕 위로 사랑 노래 대신 최루탄이 날아 다녔고 라디오 방송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을 순 없었지만, 분명코 나름대로의 낭만과 고민, 청춘의 방황이
꿈틀꿈틀 살아있던 시절.

세대마다 간직하는 애수 어린 시절의 표정은 각기 다르겠지만 그 시절 넋두리의 화두는
혼돈과 변화가 아니었을까. 통제와 강압으로 도배된 이전 시대와 다가올 세기말이
불안하게 교집합 되어 전통적 존재는 사라지고 새로운 모습들이 여기저기 혼란하게
들어서던 그 시절, 우리들에게 다양한 선택의 자유는 없었고 공존이란 방법은 아예 몰랐었다.
레드 제플린과 듀란듀란은 공존하지 못했고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들은 이른바
뉴웨이브 문화에 밀려 송두리째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져 버렸다.
한국 ROCK이 그 시기부터 오랫동안 족보를 잇지 못했던 것처럼.
그나마 이런 식의 시대적 대중문화론도 나름대로 관심을 가졌던 몇 사람만 알고 있는
슬픈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군대에 가야하고 사회에 나서야할 나이가 된 우리는
스치는 가을바람에 코끝 찡해지며 흥얼거렸던 Honesty의 가사나 남몰래 눈물 훔치며
지켜봤던 기쁜 우리 젊은 날의 슬픈 엔딩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렸을 테니까.

방대한 네트워크의 발달은 플래시 애니메이터나 웹 기획자란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냈고
더불어 CD 30장만큼의 음악을 손가락만한 플레이어에 담아 들을 수 있게 해준다.
다양한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는 요즘 세대들에게는 우리와는 다른, 색다른 개성의
아이콘들을 생산해낼 수 있는 방법들이 넘쳐날 것이라는 부러운 시선의 이면에
보기 좋은 것만 찾는 문화편식과 돈 되는 장사만 고집하는 천편일률적 프로듀싱의
행태가 한심스러운 것도 역시 시대의 다양성에 속하는 것일까.
SF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사이보그들이 죽도록 알고 싶어 하는 그 것, 인간의 본성에
대한 궁금증은 사이보그나 우리들 자신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
아무튼 혼돈과 상실의 시대이든 다양성과 공존의 시대이든 소외되고 밀려나있지만 소중한
것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잊지 않고 지켜줘야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

다시 1986년.
스크린 위로 일본인 700만명을 울렸다는 필름이 돌아간다.
뻔한 이야기. 크레딧이 올라갈 때 ‘설마 이런 영화가 정말 700만을 모았을까’ 하는 반문이
절로 나오는 아주 뻔하다 못해 유치찬란한 최루자극용 멜로 스토리.
하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잠에 들 때까지, 다음 날 출근해서 영화에 대한 정보와 배우들의 프로필,
그리고 영화음악을 검색하게 하고 급기야 이런 잡다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까지...
무슨 이유인지 이 영화는 나를 놔주지 않는다.
‘가을이라서...’
애써 계절의 탓으로 돌려버린다. 코트라도 걸쳐야 할 계절이 되었기에 그렇게 쿨하지 못한,
촌스럽고 지루한 첫사랑 타령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수학교과서 1단원에 나올 만한 쉽고도 뻔히 보이는 공식으로 만든
싱거운 영화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치열한 리얼리티도, 지독하게 정교한 짜임새도, 고독한 철학정신도 보이지 않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는 영화.

- K의 비약적 자성
그렇게 물들어 있었다.
아니, 그렇게 물들어 보이려 애쓰고 있었다.
스크린 너머 다른 세상에서 꿈과 희망을 전달하던, 내가 알던 영화들은 언제부턴가
수 백 억 단위를 움직이는 거대한 공장처럼 변해버렸고 너도 나도 비평가로 넘쳐나는
영화관련 컨텐츠의 게시판들은 가슴은 제쳐두고 머리로만 영화를 대하는 사람들의
삭막한 언어들로 가득하다. 나도 그런 사람들의 한 가운데 있었다.
오감에서 뜨거운 가슴으로 연결되는 통로들을 틀어막아 버린 체 머리 속에 이성으로 통제되는
거대한 머신을 만들어 분석력과 판단력을 겸비하고 편견과 오만한 잣대질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고독한 철학정신과 쿨하고 멋진 소재, 엄청난 CG 기술력에 치열한 리얼리티와 지독하게 정교한
짜임새만 내내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참 유감이었다. -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위의 이야기처럼 비약적인 시각의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 못하는 것이지만 -
그리고 좋은 영화라면 당연히 위의 비약에 등장하는 요인들을 제대로 버무려 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모두들 가슴으로 영화보기를 꺼리는 듯한 생각은 지울 수 없다. 그냥 드러내놓고
슬프면 슬프게, 심각하면 심각하게 느껴지는 대로 받아드리면 되는 것을 못하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일부러 꺼리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런 맥락으로「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나름 좋은 영화로 느껴진다.
후반부 내내 실컷 울려줬고 다음 날까지 이렇게 남아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지루하고 밋밋한 구조나 착해빠진 복선의 동기가 우습지만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1986년은
그렇게 착하고 느릿했던 것 같다. 지금처럼 핸드폰에 PDA에 초고속 문자와 메일이 핑핑 돌아가는 시대와는...
분명히 다른 버전이었다.
20원짜리 우표 한 장 붙여 밤 꼬박 새운 사연 담아 보내고 약속한 날이 다가오기까지 내내 설레고
즐거웠던 기분...
오래되었지만 아직 기억하는 것들...

‘하루키의 냉소적 애정관을 누른 최고의 베스트셀러’
여기 저기 영화에 대한 후문을 검색하다가 읽은 카피였다.
쿨하고 냉정한 것을 멋지게 여기는 일본에서 겨울연가란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해석이다.
냉소적으로 변해버린 자신들의 모습에 질린 나머지 감정적이고 순정적인 이야기가 인기를 얻는 다는 것,
충분히 공감간다.
하지만 왠지 이 영화가 우리 극장가에서는 일본만큼의 스코어를 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아직 우리가 그들만큼 충분히 냉소적이지 못하다는 반증은 아닐지.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오후 하늘
창을 열어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영화 속 아키의 속삭임을 떠올린다.
소중한 기억을 담은 카세트 테잎처럼 우리들 모두 어딘가에 그런 존재가 있지 않았을까.
나에게는 무엇이었을까.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는 존재.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불렀던, 애틋한 戀歌속에 남아있는 존재.
영화보기의 즐거움에 대한 의미와 더불어 어쩌면 알아낼 수 없을지도 모를 질문 하나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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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곡 瞳をとじて(눈을 감고) - Hirai Ken (재생버튼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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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navy1807  
  아주 글을 잘 쓰셨네요..잘 읽었습니다...^^
1 차성효  
  과거를 회상 한다는것은 현재에 블만이 있다는 뜻입니다
삭막하건 그렇지 않건간에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과거로 회귀 할수도
회귀해서두 안됩니다

세상의 중심에서는 아직 보지 못하였으나,
소나기 처럼 그 시절의 아련함을 떨친다면
이것역시 대중적인 소재 그자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버전의 상업성이지요

영화는 머리로 보는게 아니라 가슴으로 보는거...
그말은 맞습니다
허나 기억은 머리에 남게 됩니다

그럼,
1 하하하  
  영화 좋게 보셨나 보군여
저는 책-드라마-영화 이렇게 봤습니다
세가지 다 접한 저는 우선 영화는 실망이었습니다
뒤로 갈수로 좀 지겨웠고 사실 엉덩이가 아플정도였습니다^^;;
드라마을 먼저 봐서 그런지 몰라도 자꾸 드라마가 생각나더군요
드라마 보는 내내 정말 많이 울었는데
영화는 눈물 한방울도 나지 않더군여
대신 히라이켄노래는 언제 들어도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