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숲'의 이해 (스포 100%. 영화 보신 분만!)

영화감상평

'거미숲'의 이해 (스포 100%. 영화 보신 분만!)

1 조진우 6 10588 2

- 두서 없는 영화의 이야기 구조 풀이가 되겠지만, 그래도 거미숲이라는

영화를 보고 나서도 이 영화가 어딘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써봅니다. 설명이 반말로 진행되는

것을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거미숲에서 일어난 사건은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해두어야만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강민이 황소연(수연?)과 편집부장을 살해한 사건

이다.

그리고 또 하나 확인해 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서정이 연기

한 민수인이 실제로는 강민의 죽은 아내의 영혼이라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사실의 이해로 거미숲은 완벽히 분석이 가능해진다.

강민은 비행기 사고로 아내를 잃었다. 그리고 한동안 아내의 영혼을 살아

있는 아내를 대하듯 하며 지내왔다.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뒤 피폐한 생활을 하게 되고 - 이 부분은 어쩌면 실제 생활에 있어서는

아내의 죽음 이후 계속 피폐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강민이 아내를 끔찍이

위했고, 아내의 영혼 역시 강민이 괴로운 나날을 보내는 것을 안타까워했

다는 사실만 분명히 해 두면 될 것이다. 그런 나날 가운데 강민은 리포터

황소연을 만나게 된다. 그녀 역시 같은 비행기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으며

, 유가족 장례를 치를 때 담뱃불을 주고받은 인연이 있다. 어쨌거나 강민

은 황소연과 육체관계에 이은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되고,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단 하나의 그 사건의 원인이 된다.

황소연이 편집부장과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은 (영화에서는 밝혀지지 않았

으나) 실은 강민을 위해서였다. 프로포즈를 한 강민이 방송국에서 퇴직당

한 것을 돌려보려는 심정에 편집부장과 거래를 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가설이 가능할 수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황소연이 편집부

장의 힘 덕분에 방송국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거미숲에서의 관계는

단지 오랜 밀월을 강민에게 들킨 것에 다름 아니다, 라는 가설이 그것이

다. 하지만 이 가설은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고, 또 황소연이라는 인물의

표정연기의 무게를 생각하더라도 전자의 가정이 훨씬 아귀가 맞는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어 버렸는데, 아무튼 둘의 불륜을 목격한 강민은 둘을

죽이게 되었으며, 착란 속에서 숲을 헤매다 터널(가상의 공간인지 실제

공간인지는 불명확하나)에서 교통사고를 당하여 병원으로 실려온다. 그리

고 수술의 실패로 죽게 되지만, 아내의 영혼의 보살핌(?)으로 생의 마지

막 한 가닥 호흡을 붙잡아 다시 살아나게 된다. 그리고 분열된 자아는 기

억을 잃고, 혼란속에서 거미숲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충동에만 사로잡힌

다. 살인을 저지른 자신이라는 끔찍한 진실이지만 그래도 밝혀야만 한다

는 무의식의 작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정황 속에서 강민의 친구인

형사가 강민의 병원에서 거미숲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사건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문제는 민수인이라는 불가사의한 인물의 등장과 그녀의 과거에 대한 회상

이다. 그 내용은 처음에는 사건의 비밀, 내지는 과거로부터 온 해묵은 원

인 정도로 보여지지만, 사실은 강민의 죽은 아내가 민수인의 역할을 하며

강민에게 현실의 진실(민수인의 아버지가 낫을 들고 아내를 죽이고 민수

인을 죽인 사건이 실은 강민이 편집부장을 죽이고 황소연을 죽인 장면에

대한 은근한 암시일 뿐이라는)을 우회적으로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과거

에는 그러한 사건이 없었으며, 민수인은 그저 병으로 죽었고, 민수인이

운영하던 사진관도 사실은 그녀의 아버지의 것이 아니라 강민의 아버지의

것이었으며, 바람을 핀 엄마도 민수인의 엄마가 아니라 강민의 엄마였다

는 등, 말하자면 거미숲 속의 관사, 사진관, 민수인이 이야기해준 거미숲

에 얽힌 옛 이야기 모두가 강민 그 자신과 관련된 것들이었던 것이다. 아

내의 영혼은 그것들을 매개로 강민의 일그러진 기억을 회복시키고, 강민

에게 (잔혹하긴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 것이다.

지금까지의 설명에 더해, 영화의 끝은 강민이 기억의 고리를 한 바퀴 반

을 돌아 다시 병원에서 눈을 뜨는 장면으로 끝이 나지만 사실상 현실에서

의 사건은 강민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 기억을 회복하고 강민의 친구인 형

사가 그 동굴 앞에 나타나는 장면이 마지막이라는 사실까지 깨닫고 나면

이제 더 이상 거미숲이라는 영화가 혼란스러울 아무것도 없게 된다. 영화

거미숲은 이러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의 무차

별적인 나열이라는 표현, 그리고 영화가 너무 많은 내용을 안으로 숨긴

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표현은 이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이들

의 투정일 뿐이다. 거미숲이라는 영화는 위에서 보았듯이 의외로 선명하

다.


PS : 강민이 혼수상태에서 의식을 회복하고 깨어나는 장면에서 처음에는

노인이 강민이 일어난 것을 눈치 채고, 마지막에는 똑같은 장면을 아이가

눈치 채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은 단순한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도구가

아닐까 생각된다. 말하자면, 피폐해진 강민의 영혼을 상징하던 노인의 이

미지가 마지막 같은 장면의 되풀이에서는 기억을 되찾고 현실을 직시하게

된 강민의 내적 상태를 아이라는 이미지로 바꾸어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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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1 남녘  
  잠시전 글 올린것 지웠심다
아무래도 오해가 생길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보기따라 과격한 의미가 있길래

감우성이 난도질하다가 "시끄러워 머리가 아프단 말이야"
밑에 어느분이 올린 글입니다만
보고난 지금 제 생각입니다
뭘 간단한걸 그렇게나 어렵게 나열을 하는지...

그렇다고 뭐 혹평을 하자는게 아니라
제가 본 소감입니다

G 이학수  
  님글 보니깐.. 제가 생각했던것이 앗!~~ 아차.. 이거 구나 라고

생각이 바뀌게 됐네요.. 님이 쓴 글이 확실한것같에요.^^

감사해요.  그리고.. 마지막 한가지 의문은..뭔지 아십니까??

누군가 강민에게 전화를 하져.. 애인과.. 부장<?> 이.. 거미숲

별장에 관계를 할려고 한다고.. 그래서 강민은 거미숲으로 가잖아여~~

그부분 입니다..  그부분은 강민 조차 전혀 알수 없을텐데

강민의 이중적 자아가 그걸 알고 있었다는건가요??

앞뒤가 안맞는듯 해요.. 영화는 스토리를 쭉 나열해 놓고

그 스토리를 만든사람조차 해결못할 의문인듯 하네요..
1 조진우  
  그건 강민에게 배달된 필름을 현상하는 장면에서 선명해집니다.

그 필름이 다름 아닌 자신이 아내를 찍었던 사진들이죠.

아마도 아내의 유물로 그 자신이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관객들이 보기에는 전화로 연락을 취하고, 필름을 보내고 한 것들이

사실은 감우성 내면의 분열과 착각, 혼란 같은 것이었다, 이런 것 아닐까요?

뭐, 제 3의 실존 인물의 설정도 가능할 순 있겠지만 그런 설정은 영화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송일곤 감독이 착각한 것 내지는

실수한 것이 아닌 한, 혹은 편집된 감독판 완성 줄거리 속에 이 인물에

대한 어떤 실마리나 해명이 없는 한 이 추측이 맞지 않을까요?
1 붉은세균  
  흠..저도 이 영화를 보았을 때.. 한동안 이 영화의 풀리지않았던 부분들을 수시로 해부해보느라.. 먼산을 바라본 적이 있었습니다만.. 조진우님의 글을 읽고나니.. 상당한 설득력이 있어보입니다. 영화 자체가 100% 이해되지않았던터라.. 이영화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점수매겨 볼 겨를도 없었는데 많은 도움이 된 듯 합니다.. 그리고 글도 참 잘 쓰시는군요..
1 안성일  
  야아...잘봤어요..
이글보기전에 거미숲을 보고 왔는데..
무슨내용인지 갑갑했는데..
잘보고가요~
1 ifhappy  
  많은 도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