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의 펜]감동적인,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유쾌한...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영화감상평

[Rock의 펜]감동적인,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유쾌한...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G 樂.cinema 1 10924 77 0
"꽃, 여자, 로맨스는 언제나 낭만적인 것이지…"
세계에서 가장 좋은 품질의 쿠바産 시가를 피워 문, 역시 쿠바 사람인 이브라힘 페레르의 독백이었다.
이미 신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1940년대 이야기라면 너무 낡고 오래되어서 제대로 알아 볼 수도 없는 흑백앨범처럼 고즈넉한 것이다. 하지만 스크린 속의 노인이 된 이브라힘 페레르에겐 오래 전에 흘러간 그 세월이 삶의 전성기였다. 공산정권이 들어서기 전의 아바나, 낭만과 정열이 살아 있던 도시에서 흥겨운 리듬과 선율을 노래하던 젊은 음악가의 나날들. 하지만 짧은 그의 전성기는 끝난 듯 했고 지금까지 수 십 년의 세월을 뒷골목 구두닦이로서 보내야 했다. 1907년 생으로 나이 90을 넘긴 콤파이 세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이 독립만세를 부르던 시절에 이미 쿠바 최고의 음악인이 되었건만, 시가 공장 노동자이거나 이발사라는 직업으로 반세기를 넘게 살아야만 했다. 충분히 세계적인 음악인으로 인정받고 부와 명예를 누릴 자격이 있는 쿠바 예술가들의 단면적 인생을 보여주는 현실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스크린을 바라 볼 수밖에 없었건만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안타까움이 환희와 감동으로 변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편안하게 앉아서 담배라도 하나 피워보라고.


유명한 기타리스트이자 음반 프로듀서, 그리고 영화 음악가인 라이 쿠더는 90년대 후반에 들어 쿠바 음악에 심취하게 된다. 그리고 무작정 쿠바로 향한다. 라틴음악의 한 갈래이겠지만 독특하게 다른 그 리듬감과 살아 있는 멜로디. 쿠더는 쿠바음악과 비슷한 것이 아닌, 진짜 쿠바인들의 혼과 사랑이 담긴 오리지널 쿠바음악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쿠바의 여러 곳을 누비며 어렵사리 만난 진짜 쿠바 음악인이라는 것이 거리의 구두닦이에, 제대로 걷지도 못할 것처럼 보이는 노인에, 70을 넘긴 뚱땡이 할머니라니. 쿠더는 실제로 많이 실망했다고 한다. 적어도 그들의 연주와 노래를 들어 보기 이전에는. 단 3일만에 쿠바의 구식 스튜디오에서 즉흥 연주 형식으로 녹음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쿠바가 공산화 되기 이전, 아바나가 세계적인 유흥도시로 이름을 날릴 때에 아바나 동부에 자리한 유명한 클럽의 이름이며 영화에 등장하는 위대한 쿠바 음악인들이 당시 실제로 그곳에서 모여 연주를 했다고 함.)이란 음반을 들으며 라이 쿠더는 몇 번씩 독백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이 음악들은 정말 위대하고 경이로워…"
97년에 발매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전 세계적으로 수 백 만장이 팔리는 판매고를 올렸고 각종 음반관계 시상식에서 최고의 앨범상을 받았으며 90년대에 발매된 최고의 앨범이란 격찬을 받았다.


영화의 중간 중간에 폐허가 된 아바나의 텅 빈 클럽에서 고목처럼 늙어 버린 이 쿠바의 음악가들이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혁명은 죽지 않는다'란 현수막 아래 가난으로 피폐해진 일상이 그들 삶의 전부였겠지만 그들은 자존심을 지키며 가슴속에 꿈들 거리는 무언가를 잊지 않고 살아 왔다. 조급하지 않은 여유와 삶을 낙관하는 낭만을 가진 체로 낮엔 노동자, 구두닦이, 이발사, 시가공장 근로자로 힘들게 살지만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피아노와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르며 살아 왔다. 그들에게 음악은 단지 성공하기 위한 직업이 아닌, 삶 그 자체였으며 세월이었고 신앙이었다. 앙상하게 마른 손가락으로 피아노 건반을 누르고 펴지지 않을 주름이 가득한 얼굴로 노래를 부르지만 그들의 음악은 그 어떤 음악보다도 강렬한 에너지가 넘쳤고 감동의 환희가 담겨 있었다.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도시의 앨리스」, 「도쿄街」등 잊지 못할 명작들을 연출해 온 독일의 작가 빔 밴더스는 라이 쿠더와 친구이자 영화를 함께 만드는 동료이기도 하다. 라이 쿠더의 권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가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진지하게 아끼는 정서는 전편에 걸쳐서 흐른다. 하지만 밴더스와 같은 거장이 아니었어도 저 아름다운 쿠바의 음악가들의 삶을 그린 영화이기에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은 넘칠 만큼 감동적이었을 것이다.


90이 넘은 나이지만 콤파이 세군도는 여섯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하며 너스레를 떤다.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소년의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단 몇 개월만에 스타로 '뜨'다가 단 몇 개월도 안되어서 사라지는 어린 립싱크 가수들이 지배하는 지금 한국에서, 이 영화와 아름다운 쿠바 음악가들의 삶 이야기는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접하고 느껴야만 하는 의무감처럼 남지만 무겁다거나 부담스럽지만은 않다. 특히 마지막 카네기 홀에서의 공연장면은 눈시울이 뜨거워 제대로 바라 볼 수도 없었지만 영화가 끝나고 벅찬 감동과 더불어 또 하나 남는 것은 더 할 수 없는 유쾌함이었다. 근래에 맛보지 못한 최고의 유쾌함과 상쾌한 기분.




아마도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는 행운이 있다는 것을 내내 느끼고 있었던 것이겠지. 그리고, 그래서 영화에 빠져 지낼 수 있다는 또 하나의 이유를 만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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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홍성호  
저 이영화 극장에서 봤는데..정말 클럽에 앉아 있는줄 알았어요...^^ 너무 훌륭한 아티스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