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왕’과 ‘아메리칸 뷰티’

영화감상평

‘반칙왕’과 ‘아메리칸 뷰티’

1 최석진 1 10537 71 0
우리 시대 샐러리맨의 자화상 세 가지

지난 회에 언급한 스기야마와 비슷한 캐릭터는 영화에 많이 나옵니다. 신분과 처한 상황, 조건은 다를지라도 삶의 권태로움과 일상성에 매몰되어 있는 모습은 일반인들이 살아가는 기본 틀이니까요.

감독들은 자기 스타일에 맞춰 일상성에 깊이 천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일상성을 소재로 장르적 오락적 요소를 풀어 놓기도 합니다. 전자의 경우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대표적이라면, 후자는 최근 개봉한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을 들 수 있습니다.

'반칙왕'의 주인공인 은행원 임대호(송강호). 그는 지각대장에다 맡은 일의 성과를 전혀 보여 주지 못하는 캐릭터입니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여자에게도 인기가 없을 뿐 아니라 사회 생활에서도 자신감을 보이지 않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캐릭터는 우리 주위에 꽤 있습니다.

이로 인해 '반칙왕'은 일단 일반 관객, 더 정확하게 20대 후반의 직장 남성에게 호소할 수 있는 요소를 갖추게 됩니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액션 코미디를 표방한 영화 '반칙왕'을 이해하는 핵심 단어는 '헤드 록'이라는 레슬링 기술입니다. 임대호는 이 기술에 의해 매일 괴롭힘을 당합니다. 지점장이 매일 아침 지각하는 그에게 구사하는 이 기술은 단순한 오락적 장치라기 보다 영화의 주제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헤드록은 임대호의 삶을 피폐시키고 압박해 들어가는, 이 사회가 지닌 적자생존의 논리구조를 단적으로 상징합니다. 지점장은 임대호에게 걸었던 기술을 풀고 난 후 헉헉거리는 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은 정글이야, 정글!"

그렇기 때문에 임대호가 헤드록 기술을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일정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반칙왕'의 임대호는 심심해서 레슬링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헤드록이라는 이 사회의 본질에 대한 상징적 의미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임대호가 레슬링을 한다고 해서 무엇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정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도 아니구요. 다만 그는 레슬링을 통해 삶에 대한 새로운 의지와 용기를 얻은 것입니다. 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지점장에게 돌진하는 임대호의 모습에서 증명됩니다.

임대호는 '쉘 위 댄스'의 스기야마와 다릅니다. 스기야마의 춤이 일상의 권태로움과 무료함에서 비롯되었다면 임대호의 레슬링은 살아야 한다는 좀 더 절박한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두 영화는 얼핏 보면 비슷하지만 캐릭터 설정의 맥락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차이를 가집니다. 어쩌면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샐러리맨의 차이라 해도 어느 정도 타당합니다.

미국은 어떨까요? 좋은 사례로 올해 아카데미를 석권한 '아메리칸 뷰티'를 들 수 있습니다. 주인공 레스터 버냄(케빈 스페이시)은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친 후 운동과 마리화나를 시작하고 예전에 듣던 록 음악을 듣습니다. 딸의 친구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이 중요한 배경입니다. 이런 이야기 흐름은 얼핏 '쉘 위 댄스'와 비슷해 보입니다.

여자에게 매력을 느껴 뭔가를 시작했다는 것. 이는 두 영화가 가진 현상적 비슷함일 뿐입니다. '아메리칸 뷰티'는 '쉘 위 댄스'와 또 다릅니다. 레스터 버냄은 스기야마와 다른 불만을 자기 자신과 생활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목표 상실입니다. 스기야마처럼 사회보편적 기준에서 뭔가를 이룰만큼 이루어 놓은 것이 아니라, 무엇을 향해 자신의 삶이 흘러가는지 모르고 있다는 데서 버냄의 불만은 형성된 것입니다. 버냄은 결혼도 했고, 직장도 있지만 모두 자신이 바라는 생활상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그는 안착할 곳 없이 떠도는 인물입니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아침 샤워 시간에 하는 마스터베이션이 유일하다는 버냄 자신의 나레이션은 그가 무척이나 외롭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런 모습은 사회의 정글 논리에 치여 사는 임대호와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즉 버냄은 좀 더 개인적인 문제에 천착한 캐릭터입니다.

'아메리칸 뷰티'의 결말과 주제는 버냄의 개인적인 시야를 좀 더 사회공동체적인 관점으로 환원하는 데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그가 깨닫는 일상적인 존재들에 대한 소중함. 물론 이것은 중요하지만, 다분히 틀에 박힌 교훈 같아서 설교조의 느낌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반칙왕'이나 '쉘 위 댄스'와는 또 다른 접근법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반칙왕'의 정글 논리, '쉘 위 댄스'의 일상의 권태로움과 무료함 그리고 '아메리칸 뷰티'의 개인적인 삶의 목표 상실. 국적과 신분, 부딪히는 고민은 다르지만 세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는 모두 우리의 자화상이며, 우리의 문제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레슬링이나 사교댄스를 하거나 마리화나를 피우면 이런 고민이 좀 풀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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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1 영화광  
반칙왕 : 코미디와 슬픔이 있는 영화 하지만 임대호의 슬픔을 이겨내기 위한 감동적인 몸부림(?)있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