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과 크로우 어둠에서 부활하다

영화감상평

스폰과 크로우 어둠에서 부활하다

1 최석진 1 9296 52 0
인기있는 만화를 영화로 만드는 작업은 꾸준히 존재해왔습니다. 애니메이션 자체에서 인기를 얻은 캐릭터들도 있지만, 출판 만화에서 인기를 얻어 발전한 캐릭터들도 있습니다. 슈퍼맨 같은 캐릭터가 후자에 있어 대표적인 경우라 하겠지요.

대개 만화를 영화화할 때는 두 가지 경향으로 크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원작의 이미지 그대로 아동적인 접근법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흔하게 꿈과 희망, 그리고 아름다움과 밝음이 이 경향의 중심입니다.

이것과 좀 다르게 또 하나의 경향은 음울하고 묵시록적인 분위기를 깔면서 주인공 캐릭터의 내면에 집착해 들어가는 경향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원작 만화가 어쨌건 영화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재해석이 강한 입김을 발휘하고 있는 경우라 하겠습니다.

'슈퍼맨' 시리즈가 전자에 가깝다면, 90년대를 이끌어 온 '배트맨'(1편은 89년입니다) 시리즈는 후자의 경향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물론 '배트맨'의 경우는 1, 2편의 감독인 팀 버튼의 취향이 짙게 배어 나온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팀 버튼의 취향이 90년대 이후 등장하게 되는 만화 원작의 영화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제작사들은 이런 경향도 하나의 상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묵시록적이고 음울한 비주얼과 내러티브를 가진 '배트맨'은 좀 더 노골적인 자폐증과 내성화, 그리고 개인적인 고민을 가진 만화 캐릭터들을 스크린으로 불러 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스폰'과 '크로우'지요.

이 두 영화 사이에 있는 공통점은 부활입니다. 이 부활의 바탕에 깔린 정서는 분노이며, 그에 따라 복수라는 극단적인 형태의 감정 상태가 주인공들을 추동하는 힘이 됩니다. 스폰은 죽기 전에 정보국의 특수요원이었고, 그는 상사의 배신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합니다.

영화 '크로우'를 보면 1편의 에릭(브랜든 리)은 애인을 잃고, 2편의 애쉬(벵상 페레)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둘 다 악당들에 의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죽은 것인데, 이로 인해 이들의 원혼은 구천을 떠돌게 됩니다. 이는 동양적인 정서와 상당히 유사합니다.

이들은 죽음에서 부활한 뒤 강력한 힘을 갖습니다. 스폰은 지옥의 악마와 계약한 덕에 그의 힘을 갖게 되고, 에릭과 애쉬는 죽은 자를 인도하는 까마귀에 의해 초인적인 힘을 갖는 것이지요.

둘 다 죽음에서 부활한 탓인지 아니면 그 죽음에 이른 과정이 너무 억울함으로 인해 생긴 분노 탓인지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에 실패합니다. '크로우'에서 에릭과 애쉬를 이해하는 사람은 살아 생전에 가깝게 지내던 소녀나 새로운 여인일 뿐입니다. 두 경우 모두 여자라는 점이 묘한 성적 긴장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이것이 상업적인 전략인지, 아니면 주인공들의 감정선에 따른 캐릭터 배치인지는 불분명합니다.

반면 스폰과 의사소통하는 유일한 캐릭터는 룸펜 소년입니다. 그는 스폰에게 생전의 기억보다는 새로운 삶을 강조하는 역할입니다. 스폰의 과거를 이어주는 캐릭터는 스패즈라는 개인데, 사람이 아닌 개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 개는 어차피 주인인 스폰의 부인과 딸에게 돌아간다는 측면에서 스폰이 과거와 단절해야 한다는 점을 강하게 암시하지요.

이렇게 이들은 과거와 단절해야만 하는 운명입니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기억이 바로 그 과거이며, 그것과 단절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필연적으로 고독한 정서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세상에 다시 왔으나 그들의 기억에 아직도 생생한 과거가 지금 자신의 현실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들을 자신의 내부 속으로 침잠하게 만들지요.

에릭과 애쉬에게는 이 고민이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것으로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런 고민은 영화에서 심각하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그들의 복수는 오히려 사랑을 완성하기 위한 성격이 짙으며, 영화는 이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크로우' 시리즈는 음울하고도 묵시록적이며, 자기분열적인 캐릭터가 등장함에도 어딘가 동화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스폰'은 이와 반대되는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천국을 치러 가는 악마군의 대장이라는 임무를 맡기로 하고 힘을 얻은 스폰은 심각한 문제에 봉착합니다. 과거 자신이 충실했던 원칙이 계약 관계에 의해 파기되려 하기 때문이지요. 정의를 지키던 자가 분노와 복수로 인해 그 원칙을 잃을 지경인 것입니다.

돌아갈 수 있는 가정이 이미 새로운 가정으로 변해 버린 상황에다, 자기 자신의 원칙과 감정 사이에서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스폰의 상황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집니다. 그에게 이 고민은 부활 이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십자가 첨탑에 망또를 휘날리며 앉아 있는 스폰의 모습은 이 고민에서 그가 헤어나지 못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지옥의 악마와 맺은 계약 관계는 그것을 이행하거나 아니면 계약 당사자 둘 중의 하나가 사라져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크로우' 시리즈든 '스폰'이든 영화가 "만화같은"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이 점은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 두 캐릭터 안에 자기분열과 자기 침잠, 폐쇄성, 타인과 의사소통에 실패하고 있는 점 등의 공통점이 있어도 둘은 다릅니다.

'크로우'는 개인적인 고민을 중심으로 해서 동화같은 느낌으로 진행되지만, '스폰'은 좀 더 묵시적이고 음울한 결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캐릭터 해석에 대한 무게 중심도 다르지요.

그렇기 때문에 '크로우'는 시리즈가 TV 에피소드처럼 진행될 수 밖에 없지만, '스폰'은 어두운 자신의 개성을 속편에서 잘 살릴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신고
 
1 Comments
G 홍경탁  
  헉헉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