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영화보기 2 -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

영화감상평

숨어있는 영화보기 2 -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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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다호(my own private idaho)
       
          리버 피닉스의 엄마를 찾는 길과 키애누 리브스의 아버
          지에게로 돌아가는 길. 그 두갈래의 길. 이 영화는 그 두갈
          래의 길에 대한 이야기이다.

            리버 피닉스가 기면 -발작을 일으켜 정신을  잃을 때면
          나타나는, 황량한 들판과  구름이 마구 몰려가는  하늘, 바
          람, 낡은 집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어머니. 영화 중간중
          간마다 삽입되던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떼들의 빛나
          는 비늘과 수면에 반짝이는 오후의  햇빛. 어떤 영화 평론
          가는 [도망쳐  나왔던  가정으로 다시  돌아가는 (  come
          back home?) 미국  청소년들의 상황]이라는  표현을 썼지
          만...... 리버 피닉스가 돌아가고 싶었던 곳이 가정이라고 생
          각하는가? 歸巢本能-그런  본능이 정말로  있는지, 있다면
          오직 `가정`에서만 충족될 수 있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른다.
          내가 알 수 있었던 건, 리버 피닉스는  (그리고 나는) 쉬고
          싶어 한다는 것  뿐이다. 쉬고 싶다.  이제 스물살이 되고,
          요람을 잃어버린 나는, 마음 놓고 쉬는 법을 거의 잊어 버
          렸다. 잠을 잘  때조차도 나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악몽에
          가위 눌린다. `가정`이란, 내게 있어서는, 또다른 `세상`일 뿐
          이다. 20여년간 관계 맺었던 부모님. 나는 당신들의 어깨들
          딛고 올라서서 세상을 바라보았는데, 그 때, 그 어깨위에서
          나는 당신들을 배반할 지점을 보아 버렸다. `청무우밭인가`
          했던 것은 `수심을 알 수 없는  바다`(김기림)이었고, 그 깊
          이 모를 푸른 자유는 죽음과  등을 맞대고 있었다. 힘겹게
          부모님이 만들어 놓은  토대위로 기어  올라간 순간, 나는
          내 요람을 영원히 잃어 버렸다.  여태껏 내가 편안히 꿈꿀
          수 있었던 그  공간은 허위로  가득찬, 먼지나고 숨막히는
          박제된 공간이었던 것이다. 혼자 내던져짐.  리버 피닉스는
          그 외로움과 긴장을 견딜 수 없을 때면  기면 발작을 일으
          켜 갑작스럽게 깊은 잠을  빠진다. 아직 약한  그가 할 수
          있는 대응은 그런 수동적 거부밖에 없 는 것이다. 잃어 버
          린 `엄마`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연어를  꿈꾸면서. 이것은
          결핍의 상태이다. 리버 피닉스는(그리고 나는) 무엇을 잃어
          버렸는지 알고 있지만 다시는 그것을 찾을 수  없다는 것
          도 잘 알고 있다. `바다로간 나비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젖
          어 公主처럼 지쳐 돌아오던가`(김기림)  아니면 아키루스가
          되어 하늘 높이 날았다가  깃털을 이어 붙인  초가 녹으면
          그대로 추락하는 것이다.-`추락하지 않고 바다건너 나갈 수
          있도록 지금은 얌전히 네 날개를 만들라`라는 충고가 얼마
          나 어처구니 없는지는,  이제 여러분도 알고  있다. 그것은
          평생 낡은 깃털만 주워 모으며 둥지 주위만 맴돌라는 소리
          라는 것은, 알고 있다. 더  이상 속지않아!-이 지점은 리버
          피닉스의 첫 번째 결핍의 심연이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리버 피닉스에게 있어 (그리고 내
          게 있어), 그것은 `그 사람을 통해 세상 전부를 사랑하라`는
          Erich Fromm 충고나 `타인을 통한 자아발전`이라는 심리학
          적 목적과는 무관한 경험이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음이고,
          상대방의 영혼에 그 특성에 감염되는 것이다.  그 순간, 사
          람을 사랑하게 되는 순간을 비켜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것
          이다. 그것은 모든 일상과 동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유희적인 것이다. 나는 물론 잘 알고 있다. 잘 살아내기 위
          해서는, 한 사람의 건실한 몫을  다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그런 식의 `유희적`인 사랑은 곤란하다는  것을. 하지만, 어
          쩌란 말인가. 사람에게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것이 있
          기 마련이다. 리버 피닉스는(그리고 나는) 그  순간을 피할
          수 없었을 뿐이다. 나는 `사람`을  사랑함이라고 썼다. 리버
          피닉스가 사랑한 사람은 그와 동성인 키에누리브스였다.
            갑자기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Gay해방을 지지한다는 국제사회주의자들로부터,  동성애는
          神이 금지한 것이라는 기독교인들의 목소리까지. 동성애에
          대한 내 입장은 이 글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리버
          피닉스가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
          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차별적인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양성애자 소년은, 양성애자라는 이름대신, `사랑에 익숙
          한 소년`이라고 했는데,  어떤 점에서는 적절한  호칭인 것
          같다. 리버 피닉스가 사랑한 사람은 키애누 리브스다. 그는
          예전부터 남자들이랑 자는 것은 단지  돈 때문이고, 돈 안
          받고 다른 남다랑 자면  Homo Sexual이 된다고 말해오던
          터였다. 하지만, 엄마를 찾아가는 길.리버 피닉스는 키애누
          리브스와 모닥불을 피워놓고 노숙을  하면서, 그에게 처음
          으로 사랑한다고 말했다. 이 장면은 기막히게 아름답고 슬
          프다. 내가 본 소설,영화등 등을 통들어  가장 아름다운 사
          랑의 고백이다. 어떤  이는 나더러, 이루지  못할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게 아름답고 슬픈 것이냐고 물었지만, 그건 핵
          심이 아니다. [사랑이 이루어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異性을 사랑해서 가정을 만드는  것이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앞에서 쓴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그것 자
          체로 완결적이며 그것  자체가 슬픈  일이다. 그런 감염과
          일상과 동떨어진 유희는  얼마나, 슬픈 일인지,  나는 알고
          있다. 그 대상이  同性이고, 게다가 `정상적으로(!)`  이성을
          사랑하고 결국에는 `아버지`에게로  돌아가 버리는  키애누
          리브스였기 때문에, 한 번 더  거부당했고 더 지독하고 슬
          퍼보였을 뿐이다.

            리버 피닉스가 사랑한 키애누 리브스.-  그의 `아버지에
          게로 돌아가기`
            그는 리버 피닉스와는  전혀 다른 길을  택했고 자기의
          길로 갔다. 그것뿐이다. 리버 피닉스와 함께  찾아갔던 이
          탈이라에서 한 소녀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리버 피닉스와
          함께 왔던 시골길을 이제 그  소녀와 되돌아가는 것, 그로
          인해(?) 리버 피닉스가 혼자 방안에  틀어 박혀 그 무겁고
          씁쓸한 공기를 호홉하는  것. 키애누 리브스는  결코 `다치
          지` 않지만 그걸로 그를 비난할 수는  없다. 리버 피닉스는
          그 무게를 혼자 견뎌야 하는 것뿐이다. 키애누 리브스에게
          어떤 작위나 무작위를 요구할 수는 없다.  이런 일은, 실은
          종종 발생한다. 나는  다만 `나의 몸짓`을  했을 뿐인데 저
          사람은 `상처`를 받는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는 오히려 `상
          처`받는 사람에게 강해질  것을 요구할 수  있을지언정 `상
          처`준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다. -`상처`라니,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단어이다.-키애누  리브스는 그 길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 버린다. 市長이자 부자인 아버지. 여
          태까지의 부랑자 생활을 정리하고, 아버지가 죽자 그 유산
          을 물려받고, 이탈이아 소녀와 함께 정장을 차려입고, 근사
          한 식당에서 지방 유지들을 만나며, 옛날 부랑자 생활동안
          `진정한 아버지`로 여겼던 보브를 외면하는, 정해진 일련의
          포즈들.그는 `내팽개쳐버리기보다는 살짝  비켜가는, 또 비
          켜감으로써 살아갈  수 있는`(백민석)  사람이다. 그에게는
          부랑자  생활이란, 아버지가  살아계신 동안  그 속박에서
          벗어날 잠깐의 일탈이엇고, 이제  다시 `정상의 세계`로 편
          입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의 `길`이다. 영화의 뒷부분. 키애
          누 리브스가 한때 `진정한 영혼의 아버지`라 여겼던 부랑자
          대장 보브의 장례식과, 그의 진짜 아버지,  돈 많은 시장의
          장례식이 나란히 거행된다. 키애누 리브슨 당연히, 검은 양
          복을 입고, 따분한 표정을 한 이탈리아  소녀와 함께, 찬송
          가가 울려퍼지고, 목사가 엄숙한 표정으로 성경을 읽는 시
          장의 장례식에 앉아 있다. 리버 피닉스는 다른 부랑자들과
          함께 보브의 장례식에  참가하고 있다. 보브의  장례식. 그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에서 그들은 찬송가 대신에 보브
          의 이름을 외치고 서로 엉키고 날뛰며 그들의 아코디언 따
          위의 악기로 죽은 이를 애도하는데, 키애누 리브스는 다만
          말쑥하게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을 뿐. `정상의 세계`로
          편입한 그에게는 죽음조차도  수많은 계산과 儀式이  얽혀
          있는 것이며, 그래서 죽음조차도  정직하고 숙연하게 받아
          들일 수 없다. 아버지의 죽음은 곧 유산일 뿐이다.
           
            마지막 장면. 영화는 첫 장면으로  되돌아 간다. 끝없이
          펼쳐진 고속도로와 그 앞에 서  있는 리버 피닉스. 길에는
          모두 표정이 있다고, 자신은 `길의 감식가`가 될 거라고 그
          는 말한다. 이제 그는 그의 길을 안다. 리버 피닉스는 다시
          기면 발작을 일으킨다.  이제 그의  길이 어떤 표정인지도
          아록, 자신은 길의  감식가가 될거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 그는 무섭고 긴장하는 것이다.  쓰러진 그의 곁을 지
          나면서, 어떤 이들은  정신을 잃은  그의 소지품을 빼앗아
          가지만 다음에 온 사람들은 그를  차에 태워 준다. 영화는
          그렇게 끝난다.

조금은 어렵게 본 영화입니다..
소재도 특이했구요..(남창).. 하지만 누구에게나 권하는 명작입니다.
일찍 요절한 리버피닉스의 연기도 압권이고요..
정말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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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최윤석  
고딩때 3개 동네 총 14군데의 비디오숍을 돌아다니며 찾은 생각이 나네요...
1 김민철  
  -^^-
1 김윤호  
감동과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