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ffee Music B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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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Music Box

1 ROCK 0 4974 9


Coffee Music Box라는 음악다방이 있었다.
줄여서 씨엠비라고 했었다.
전북 익산에, 1984~1990의 시간동안,
2,3층은 대형개봉관 극장이며 지하 1층은 대형 나이트클럽이었던 건물의 1층에,
기둥 하나 없는 150평 직사각형 구조로된,...
당시 싯가로 오천여만원이었다던 괴물같은 메킨토시 진공관 엠프가 두 대,
한 가운데 앉아서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으면 현기증이 날 것 같았던 소리들...
그 웅장하고 위대한 소리를 질러대던 탄노이와 JBL 대형 스피커들...
150인치 대형 프로젝트에 200여장의 레이져디스크, 6000여장의 LP, 그리고
난생 처음 구경했던 일본 직수입 CD와 플레이어...
엄청난 장비들이 운집했던 D.J 박스...

갈 곳 없었던 열 일곱, 열 여덟 시절에
500원짜리 빽솔 담배 한 갑 사들고 찾았던 구석자리의 씨엠비에서 나는
레드제플린과 야드 버즈, 제니스 저플린과 지미 핸드릭스를 만나고, 배웠으며
고독과 더불어 이유없는 괴로움을 주던 청춘의 울분을 달래곤 했었다.
지금은 50만명 가까운 회원수의 유명 영화사이트를 운영하는 선배와 함께
1000CC 생맥주 한 잔의 취기가 오르면 죽기살기로 영화이야기와 음악이야기를 다퉜고...
너무 일찍 하늘로 날아올랐던 영웅들...
존 레논과 짐 모리슨, 존 보넴과 랜디 로즈, 필 리뇻을 추모했으며
세기의 기타리스트 잉위 맘스틴의 탄생을 지켜봤다.
스윗 피플의 원더풀 데이스를 들었으며
황병기님의 가야금 소리를 들었으며
바하와 모챠르트를 연주하는 카라얀의 베를린 하모닉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씨엠비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여자'를 느끼게 했던 아이에게
정말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했었고
줄곧 그녀를 기다리는 시간을 너무나 행복해 했었고
끝내 오지 않는 그녀를 위해 밤 10시, 다방이 문을 닫을 때까지 앉아 있곤 했었다.

유리 박스 안에서 근사한 목소리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디제이 형들을
죽도록 선망했으며
꿈에서도 턴테이블에 LP 디스크를 얹고 노래 중간의 홈에 바늘을 맞췄던 나는...
끝내 씨엠비의 마지막 방송시간을 담당하는 비운의 디제이가 되었고
그 음악다방,
그 쇠퇴하고 손님없고 거대한 공허에 감싸인 음악다방의 최후를 지키는,
테이블마다 의자마다 어린시절의 한숨과 눈물과 호기심이 묻어있는
아름답고 섬세하고 눈물겹게 고마웠던 친구 씨엠비의 마지막을 봐야만했던...
디제이가 되었어야 했다.

영화 친니친니의 한 대목에서 나레이션은 말한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목만이가 있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씨엠비가 있을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은 자주, 곧잘 나에게 말한다.
'당신은 너무 감상적이다. 당신은 너무 과거집착적이다.'
아직도 가수 이지연을 떠올리며 행복해하고 씨엠비를 기억하며 코끝이 찡해지는 나는
충분히 그런 사람일 것이다.
충분히,

나는 그런 사람이라서 아직은 행복하다.


스노우 캣 홈에 올라온 예쁜 턴테이블을 보고 씨엠비를 기억했던 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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