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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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드라마

G 드바 2 8050 1
이틀 연속 야구 때문에 속이 상했다. 아니,
속이 상한 정도가 아니라 당분간 우울한 기분이 이어질 전망이다.
다혈질인 나는 쉽게 흥분하고 쉽게 자제력을 잃는다.
(이런 성격때문에 30년 넘게 살면서 손해본 것이 무수하다...)

"딱~!"
티노 마르티네스가 병현의 볼을 때렸다.
그 "딱"소리가 나기 직전에 나는 중얼거렸다.
"병현아.. 홈런만 아니면 이긴다..."
그런데 내 중얼거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리즈 내내 침묵으로 일관하던, 저 위대한 양키즈팀 4번타자
마르티네스의 방망이가 곡선을 그렸고....
곧 병현이 던진 볼은 긴 포물선을 그리며 담장을 넘어갔다.

내 두 손이 꼭 쥐어져 있었고, 땀이 흥건히 배어있었다.
8회 아슬아슬한 기분을 잠재우면서 3명의 타자를 돌려세웠던 그 패기...
한국인, 아니 동양인 최초로 야구의 정점인 그 대단한 무대에서 일획을
긋는 순간을 기대했던 가슴 설레임... 그 모든 것을 날려버린 그 "딱"소리는
이미 지터의 홈런을 예견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누가 예상했겠는가...전날 60개의 볼을 던진 마무리를 다시 마운드에 올리리란 것을...
브렌리 감독은 그만큼 나이 어린 한국인 투수 B.K를 믿고
(믿는 다기 보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였겠지만) 다시 양키즈의 차가운 마운드에 올려세웠다.
다시 내 손은 땀이 흥건히 배기 시작했다...

설마...설마...
두번째 아웃카운트를 삼진으로 잡을 때만해도...
덕 아웃의 실링, 존슨처럼...그 시간에 야구를 보는
모든 한국인처럼, 나도 환호성을 질렀다.
'이젠 됐어... 이젠 된거야...어제는 지나간 악몽이었어...'
그러나....(더 이상은 가슴이 아파서 쓰질 못하겠다)

야구는 드라마라고들 한다.
모든 스포츠가 드라마틱한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특히 야구는 그 증세가 심하다.
양키즈가 이틀 연속으로 9회말에 살아나 역전을 만들어낸 저력을 보면서,
게임이 끝나고 울려퍼지던 프랭크 시나트라의 "뉴욕 뉴욕"을 들으면서...
그리고 병현의 지쳐보이는 어깨와 눈물 가득한 눈을 보면서...
나는 정말 야구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환호하고, 절망하고...두 손에 가득 맺혀지는 땀방울을
즐기면서 경기를 기다리는 것일까?...

'병현 나이였을때 난 뭐하고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해봤다.
이틀 연속으로 다 잡았던 경기를, 그것도 일생에 한 번 잡아보기 힘든 경기를
잃어버린 병현은...그러나 아직 스물 두살이다.

주변의 모든 비난을 일축하며...아직도 B.K를 믿는다고 역설하는 브랜리 감독,
"B.K가 없었다면 우리 팀은 이 경기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존슨과 실링,
마운드에 주저 앉은 병현을 일으켜 세우고 어깨를 감싸주던 동료들...
하루가 지난 오늘, 여기 저기에서 창피하다는 둥, 정신차리라는 둥
병현 이야기가 적혀있는 게시판의 글들을 보면서... 자꾸만 그들의 모습과 이야기들이 오버랩된다.

게임은 질 수도 있다.
남은 경기에 다시 나와서 또 다시 질 수도 있다.
스물 둘의 병현은 지금 스스로 감독이 되어서 영화보다 더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지든 이기든...결과보다 과정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그래서 더 감동을 주는 병현의 동료들을 보면서...
나는 다시 야구란 드라마의 새 맛을 배워간다.

P.S ....그러나 병현과 그의 팀이 이기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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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ments
G 르노  
TV를 켜는 순간 홈런을.. ㅜ.ㅜ 한 3일을 맛이 가서리 보냈다는 좌절하지말고 끝까지 나와서 멋진 마무리 했으면 좋겠습니다. ㅜ.ㅜ
1 주니  
정말 좋은 말씀이십니다..지금의 그에게 비난을 보내기보다는 앞으로의 그의 발전된 모습을 기대하는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이겠죠..아마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힘든 과정을 잘 이겨내리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