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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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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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떤 전조도 없었다. 

목조 방문 틀에 턱걸이용 바를 앉은 키보다는 높은 가슴 높이로 고정하고 끈을 연결하여 목에 걸었다. 

혹시나 싶어 왼손에 케이블 타이를 느슨하게 찬 뒤 오른손을 집어넣고 이빨로 잡아당겨 단단하게 양손을 묶었다. 

미련은 없었다. 

걸터앉은 의자를 밀어내자 체중이 쏠리며 목에 압박이 시작되었다. 생각 이상으로 더럽게 괴로웠다. 

죽음의 순간에 대해선 타인의 경험을 들을 수도, 자신의 경험도 불가능하니 이런 경우의 예상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경험론적이지 못한 비과학적 상상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생각한 순간 무언가를 봤다. 뇌에 공급되는 산소부족에 의한 일종의 환각 같은 것이리라. 

집을 나간 그녀가 절묘한 타이밍에 돌아와 내 죽음을 막아내는, 영화의 한 장면도 아니고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않은가. 

어쨌거나 죽어가는 시간은 생각보다 꽤 길었다. 

이 역시 예상을 넘어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실제의 죽음은 당신이 생각하는 죽음보다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고통의 시간도 늘어갔고 뻘겋던 얼굴이 시퍼렇게 바뀌며 겨우 그 고통의 시간이 끝나갈 무렵, 

문이 벌컥 열리며 어디선가 그녀가 나타나 가위질로 내 목에 걸린 끈을 잘라버렸다. 

아, 정말 그녀는 악마다. 

나타나도 하필. 왜, 지금, 이제야. 

콜록거리며 기침을 해대는 내 뒤통수에 “누구 맘대로? 뒈지려면 나가 뒈져.”라며 그녀는 욕설을 내뱉고 바로 나갔다. 

나는 좀 전에 환각이라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진 것에 어리둥절했다. 

잠시 후 뇌에 산소가 돌기 시작하면서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이미 그녀가 날 구하러 올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얼마 전부터 그런 믿음이, 확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일종의 예지 능력 같은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그것을 믿었고 그것을 실험했고 그게 성공한 것이다. 

실패한다고 한들 자살은 성공했을 테니까. 

궁금한 것은 그녀가 나를 구하러 올 것이란 것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내가 자살할지 어떻게 알았느냐는 것이다. 

내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날 이후, 사람들 모두에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시작했다. 


-  메모장에서 발견한 옛날 낙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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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26 장곡  
끔직한 상상이네요.
장난이라도 절대로 실천에 옮기지 마세요.
17 달새울음  
걱정마십시오 ㅋㅋㅋㅋ
예전에 까페에서 놀며 단편소설을 써볼까 끄적거려 본 낙서입니다.
20 큰바구  
헉~ 설마 논픽션은 아니겠죠?
옛날 낙서장이라뉘~~ .................................................................
17 달새울음  
넹...100퍼 픽션입니다. ㅋㅋ
S 푸른강산하  
40 백마  
본인의 낙서장인지... 헉
17 달새울음  
요즘은 까페를 못가서 그렇지 코로나 이전엔 극장에서 영화 한편 때리고 나오면
까페에서 혼자 이런 낙서하며 두세시간씩 놀다 들어가곤 했습니다 ㅋㅋㅋ
10 쌍동이여우  
소설이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