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뭐라고 그렇게 싸우는지...
작년에 자료실에 올라온 글들을 읽다가 두 사람이 격하게 싸우는 글을 봤습니다.
내용인 즉슨 도저히 구하기 힘든 영상인데 자막 파일만 올리면 뭐하냐는 다소 짜증 섞인 댓글에 자막 번역자가 여기가 동영상 공유 사이트냐고 험한 욕설로 대응하는 것이더군요.
두 사람 다 입장은 이해가 갑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는 영화가 보고 싶은데 찾아봐도 찾을 수 없으니 답답하겠지요.
번역자의 입장에서는 영상 출처까지 제공할 의무는 없는데 거기에 불만스런 댓글이 올라오니 짜증이 난거구요.
제가 한때 친하게 지내던 영화평론가가 기억이 납니다.
'지금 시네마테크에서 이런 영화하는데 안보냐?'라도 물으면 무심하게 '영화는 자기랑 맞는 때가 있는거야. 아등바등하면서 억지로 안 볼려고...'하고 대꾸를 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참 게으런 평론가다하고 생각했는데 지나고보니 또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남들이 좋다는 영화, 이 영화 안보면 꼭 죽을 것 같은 영화... 사실 보고나면 별 것 아닌 것도 허다하고... 왜 좋은지도 모르는 영화도 많습니다.
잘 볼 수 없다는 희소성 때문에 과대평가된 느낌도 들구요.
그러다 문득 아무 생각없이 우연히 보게 된 영화 중에서 내 인생의 영화를 발견하게 되기도 하구요.
누가 '이 영화는 꼭 봐야할 걸작이야!'라고 하면, 요즘에는 속으로 '그건 임마. 니 생각이고...'하고 넘깁니다.
한때 출판계에 '죽기전에 꼭' 시리즈가 유행했습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0편>,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1000곡>,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00장소>...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뭐 그렇게 많은지... 저거 다 채우려면 불로장생을 해야할 판입니다.
다시 본론만 말하면, (별 것 아닌 제 생각엔) 세상에 꼭 봐야 할 영화는 없습니다.
그냥 그때 그때 운에 맞게 보면 되는 거지요.
구하기 힘든 영화 그렇게 짜증내고 험한 말 들으면서 볼 필요 있을까요?
저도 얼마 전까지 씨네스트에 올라온 자막보고 '어 이 영화는 한번 봐야겠다'하고 영상 찾아보고 수소문하고 그랬는데 이제부터는 그냥 마음을 비우는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생은 짧고 봐야 할 영화는 차고 넘칩니다.
어차피 다 못 볼 영화입니다. 굳이 아쉬운 소리 할 필요없습니다.
내가 본 영화, 볼 수 있는 영화만 봐도 행복합니다.
아울러 좋은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시는 씨네스트 번역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덕분에 저는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