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V 때 질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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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 때 질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15 하스미시계있고 8 576 0

어제 저녁 김덕중 감독의 <에듀케이션>을 봤습니다.

영화는 좋았고 영화가 끝난 후 이어지는 GV(관객과의 대화)에도 참여했습니다.

이런 GV가 그렇듯이 감독과 주연 배우들이 참여해서 소소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방금 끝난 영화의 온기를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진행자가 관객에게 질문을 받고 게스트가 대답을 하는게 관례입니다.

어제도 여러 질문과 답변이 있었습니다. 저도 마음 속에 두고 있었던 질문이 두 개나 있었지만 끝내 하지는 못했습니다.


몇년 전까지 이런 자리에서 늘 질문을 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항상 실망스러웠습니다. 그건 대답을 하는 게스트가 문제가 있는게 아니라 질문을 하는 제게 더 문제가 있는 것이었지요.

어찌보면 감독과 배우의 답변은 해당 영화에 대해 가장 정확한 정보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품고 있던 그 영화에 대한 신비감이 너무 쉽게 걷어질 때 방금까지 내가 좋아했던 영화가 초라해지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한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은 수용자의 화려한 착각의 영역에 속하는 것일터인데 답변을 들은 후 뼈아픈 이해로 전환되면서 생기는 그 간극이 저는 두려웠던 것입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영화가 그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의도를 존중할 필요는 있지만 굳이 GV까지 챙겨 들으면서 내 감상의 일부를 수정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어제 <에듀케이션>을 보면서 제 마음 속에만 남겨둔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영화는 새로운 삶을 찾아 스페인으로 떠나려는 성희가 장애인 활동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겪는 에피소드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돕는 장애인 집안에 최대한 안 엮이려고 노력을 합니다. 이기적일 정도로 공과 사를 구분하지만 점점 성희의 마음이 흔들리게 되어가는 과정을 영화는 그리고 있습니다.


제가 가진 첫번 째 질문은 성희의 모습입니다.

이 영화는 성희가 서있는 모습으로 작동하는 영화입니다. 영화에서 성희의 지배적 이미지는 가방을 매고 영화의 상당 부분을 물끄러미 서있습니다. 그것은 언제라도 나는 사건에 개입하지 않겠다. 최대한 내 일만하고 서둘러 빠져나가겠다라는 생각이 육체에 각인되어 있는 듯합니다. 

자세히 보면 성희를 연기하는 문혜인 배우는 두 가지로 회피의 의지를 신체적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는 방금 말한대로 적극적으로 그 공간을 떠나기 위해 서있는 모습이라면, 다른 하나는 상황이 자신을 지나가도록 비켜서있는 모습으로 표현합니다. 저는 문혜인 배우의 서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반드시 봐야할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기적인 성희의 생각에 구멍을 내는 것은 성희가 허리 디스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곧추서있던 성희가 장애를 겪게되는 것이죠. 장애인 행동 보조요원인 그녀가 디스크라는 장애를 겪게되면서 그녀의 (이기적) 행동은 자아에 의해 보조를 받게됩니다. 영화에 마지막은 지금껏 서있던 성희가 현목과 뒤엉켜 싸우는 장면입니다. 성희는 이제 자신이 도망치려했던 그 공간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됨을 서있음에서 나뒹굼으로 바꾸어서 연출한 것이지요(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에서 문혜인 배우는 허리를 다쳐 일년간 장애를 겪었다고 합니다).


저는 문혜인의 서있는 연기가 제가 해석한 저런 의미로 적극적으로 연출된 것인지 그냥 그 상황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제스츄어에 불과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또다른 질문거리는 영화 중반의 전동 스쿠터 장면입니다.

성희의 실수로 장애인이 밥을 먹다 체하고 성희는 그 자리를 또 빠져나옵니다. 며칠 장애인을 만나지 않고 방황하다가 예전 알바로 같이 지냈던 친구와 술자리를 합니다. 술을  마시던 성희는 친구가 가지고 온 전동 스쿠터를 빌려타고 밤거리를 달리다가 한적한 장소에게 현목(장애인의 아들)에게 전화를 합니다.

인물이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을 벗어나지만 인물의 심리적 긴장은 이어질 때 감독의 연출력의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이 장면은 굉장합니다.

저는 이 장면의 연출 의도가 성희의 심리 상태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해 묻고 싶었습니다.


아쉬움을 뒤로  한 GV 자리였는데... 여기서 글을 적다보니 질문을 안한게 나았네요 ^^

영화는 여유가 되면 보십시오. 올해 기억할만한 영화 중 핝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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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26 장곡  
영화를 안봐서 모르겠는데 봐야겠네요.
네. 볼만합니다. 실망하지는 않을 거예요.
S 컷과송  
제가 GV를 듣지 않는 이유와 거의 비슷하네요. 유일하게 남아서 질문과 답변을 들은 GV는 전주에서 벨라 타르 감독전이었는데, 그 이후로 GV의 효용성에 의문이 들어 차석하지 않습니다.
그건 평론가들의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제게 벨라 타르는 허장성세가 심한 감독입니다. 늘 미심쩍은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는데 전주에 초대받고도 사고(?)를 쳤더군요
10 쌍동이여우  
에듀케이션 한번 봐야겠네요
14 스눞  
저도 하스미 님과 비슷한 일을 몇 번 겪은 후에는 가벼운 질문을(보통은 관객의 질문보다 게스트의 대답이 짧지요 ㅎㅎ) 합니다.
다양한 질문이 있는 게 좋긴 하지만 어떤 질문들은 궁금함이 아니라 게스트에 대한 찬양 비슷해서 실소가 나오기도 하고요.
GV에 대한 기대치를 포기한 후에 마음이 편해져서 질문을 자주하는 편인데
지금껏 질문보다 답변이 (상당히) 길고 (더 깊게) 상세했던 경우는 허우 샤오시엔 감독님이 생각납니다. 통역하시는 분이 당황할 정도로요 ㅋ

몇년 전 참석했던 <들개> GV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관객들 질문 열기도 뜨거웠고 (시간 제한도 없던 GV인지라) 김정훈 감독님이 질문 하나 하나에 성심성의껏 답변을 해주셔서
현장 분위기가 참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스미 님 생생한 GV 현장 르포를 보니 코로나가 확산하는 이 시국에도 여전히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의 열기는 뜨겁네요.
올려주신 글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에듀케이션> 메모해 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 ^_^
허우 샤오시엔 감독 GV에 저도 두 번이나 참가했는데 참 열정적이시더라구요. 에너지가 엄청 강한 분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준비해 간 책(호주에서 출간한 허우 샤오시엔 연구서)에 사인을 요청했는데 여성 팬들 다 사인해주고 해주시데요(여성을 엄청 좋아하시는 듯).ㅜㅜ
사인은 명필이었습니다.
40 백마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