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도 오고 여름이고 아비정전이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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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 오고 여름이고 아비정전이 보고 싶어서...

17 달새울음 6 664 2
*이 글은 영화감상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쓴 잡담이라 존칭 생략합니다.
*몇 년 전 비오는 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쓴 글이라 기억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스포일러도 있습니다.


영화를 하나 봐야겠다 했는데 그게 마침 왕가위의 <아비정전>이 보고 싶은거지.
수년 전 사둔 DVD타이틀을 첨으로 꺼내 컴터에 연결하니 화질이 졸라 구리네.
이 양심도 없는 업체야, 비디오화질로 DVD플랫폼으로만 바꾸면 DVD냐?
그래서 차라리 다운받아보자 했던거야.
제휴에는 HD가 있겠지 싶어 네이버에 들어가니 천원인거야. 생각보다 싸다 싶어 가볍게 결제하려는데
최고화질에 '제작사가 공급한 최고의 화질'이라는 문구가 보이네? 다른 영화는 이런 문구 없는데 의심스러운거지.
아니나 달러 마침 댓글에 이딴 화질 팔아먹냐며 욕하는 소리도 있는거야.
다른 곳도 찾아보니 상황이 비스무리해보여 결국 DVD로 그냥 보자 한거지.

그렇게 구린 화질로 추억을 되새기며 영화를 보려니 아비정전의 제작자가 등광영인거야.
오호라. 물론 이 양반이 누군지 요즘 애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8,90년대 홍콩영화 좀 봤다하는 사람들은 기억할거야.
떡대 좋고 잘생긴, 한국으로 따지면 남궁연같은 서구적 배우지. 당시 들리는 소문에는 홍콩 삼합회와 연관되기도 했다는...
홍콩영화산업이 삼합회와 연관되어 한때 좀 시끄럽기도 했잖아. 주성치 영화에도 그런 소재가 나왔던 것 같아.
어쨌든... 등광영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하나 있어. <영웅투혼(강호용호투)>이라고 주윤발과 형제로 나오는 영화야.
도둑질하던 고아인 두 형제가 카톨릭 고아원에 들어가고 주윤발은 그곳에서 만난 한 소녀를 사랑해. 
동생역은 주윤발이고 형이 등광영이었어. 무엇보다 이 영화의 백미는 마굿간에서 악당 조폭들과의 싸움이야.
마굿간 양쪽 끝에서 주윤발과 등광영이 조폭들을 몰아놓고 싸우는 총격전,
그리고 총알이 다 떨어졌는데 밖에는 경찰이 진을 치고 악당두목은 아직 살아있는거야.
두목은 형제를 약올리지. 경찰에 투항해도 자신처럼 돈 있는 사람은 감방에 안간다나.
결국 형제는 빈 총으로 두목을 방패로 경찰에게 총구를 겨누고 경찰들의 총알세레에 죽음을 맞이해.
지금 생각하면 졸라 유치할 수도 있어. 근데 이 영화를 볼 때 내 나이가 중3이었어.
지금으로 말하자면 중2병이라고나 할까.
이보다 1년 전에 개봉한 영웅본색 때는 동대문 흥인시장에서 검정 바바리코트를 사서 입고다니기도 했지 입에는 성냥개비를 물고.
물론 <탑건>때는 항공점퍼를...소방차때는 승마바지. -.-;;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게 왕가위야.
제작자이기도 했던 등광영은 여기서 왕가위의 재능을 믿고 그를 감독데뷔 시켜주지.
그 작품이 왕가위의 데뷔작 <열혈남아(몽콕하문)>. 문제는 왕가위가 작가일때랑 감독일때랑 완전 다르다는거.
열혈남아에선 총격씬 하나 없었고 흥행은 개박살. 그나마 평단의 평이 좋아서 등광영은 왕가위의 두번째 영화를 제작해 줘.
최고의 상업영화를 기대하며 최고의 흥행배우들을 캐스팅 해주지. 그게 저주받은 걸작 <아비정전>이 되는거야.
제작자인 등광영은 이후 왕가위와 바이바이~ 삼합회 설이 돌았다는 것을 가정할 때 왕가위가 살아남은 것도 기적.
<아비정전>을 보면 아비(장국영)는 참 나쁜 놈이야. 그런데 다시 보니 중2병 말기 환자인거지.
장만옥에 60초만 어쩌구 하는거나, 맘보춤을 추는 꼬락서니. 발 잃은 새는 힘들게 날개짓하다 땅에 내리면 죽는다 어쩌구는 허세가 압권인게지.

난 이 영화에서 유덕화를 좋아했지. 특히 장국영에게 상처입은 장만옥을 보듬어주는,
전차가 다니는 도로를 걸으며 대화하는 장면말이야.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자신은 가난을 몰랐지만 학교에 들어가 남과 비교하게 되면서 가난을 알게 되었다는...
선원이 되고 싶었지만 아픈 노모때문에 경찰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마치 <중경삼림>의 예고같기도 하고.
유덕화는 그날 이후 장만옥을 그리워하지.
그러고보면 이 무렵부터 유덕화를 좋아한 것 같아.
친구를 위해 손목을 내놓기도 하고 친구의 아내를 구하기 위해 독약을 마시는 <지존무상>,
사고치는 동생 때문에 늘 힘든 형<열혈남아>, 증인을 없애지 못하고 사랑에 빠진 강도<천장지구>,
마약 조직에 위장잠입한 형사로 밑바닥의 여자 오가려와 사랑에 빠진 <복수의 만가>.
신념과 세월을 거슬러 찰라의 사랑에 빠져 배신한 <연인>에게 약자가 되는,
그리고 <스틸 라이프>에선 가정부였던 여인을 보살피는 따뜻한 영화제작자.
영화 속의 그는 타인의 불행에 눈물을 흘리는 캐릭터였던 것 같아 그가 좋았어.

<아비정전>은 때려치고 케이블 이달의 무료영화에 <영웅투혼>이 있던데 그거나 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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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13 리시츠키  
잘봤습니다. 글을 아주 맛깔나게 잘 쓰시네요. 읽는 재미가 아주 감칠맛이 납니다^^
저역시 예전에 <킬빌>을 다시보고싶어 디비디로 재감상하는데 기절하는줄 알았습니다.
화질이 정말 말도 못하게 못볼 수준이더군요.
디비디로 영화감상하는게, 720p 파일을 보기 전까지는 행복했었는데 말이죠.

당시 홍콩 배우들은 장국영, 유덕화는 물론 수많은 여배우들, 심지어 조연들까지 모두가
자기만의 개성과 외모, 연기들로 무장한 좋은 시절이었던거 같습니다.
그중에, 저는 이상하게 홍콩영화하면 이제는 돌아가신 성규안 씨가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지금도 홍콩영화 어디선가 무자비하고 비열한 때로는 비굴한 악당연기를 하고 있을거만 같은데 말이죠.
홍콩영화 틀면 장르 안가리고 모든 영화에 모두 악당으로 출연하신분이 돌아가셨다니 기분이 묘해지더라구요.

90년대에 홍콩영화 틀면 거의 맨날 나오니 인이 박혀서 그런가 싶다가도(아임디비에 따르면 80말90초 한 해 20편은 기본 출연하셨더군요),
한번보면 잊을래야 잊을수없는 외모와 연기 때문인가 싶다가도,
소위 영화감상의 클리셰가 되버린 홍콩반환 정서 때문인가 싶다가도,
꽃미남 수퍼스타들에 가려서 악당연기만 해야했던 어떤 불운(?) 때문인가 싶기도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훌룡한 배우였고 이런 배우는 다시는 볼 수 없어 아쉬운 마음인가 싶기도 합니다.

제게는 찰스브론슨과 어떤 면에서는 이미지가 겹쳐지기도 하는데, <옛날옛적 서부에서>같은 영화의 주연작 하나 있었으면 참 좋았을거 같습니다.
이런 훌룡한 배우를 조연으로만 쓴 것이 한탄스럽기도 하네요.
글고보니, <아비정전>에서는 성규안씨가 출연을 안했네요ㅎㅎ

암튼, 재미난 글 잘 봤습니다^^
17 달새울음  
성규안 배우는 진짜 못~되게 생겼죠.
철협쌍웅에서 주윤발에게 꼭 그렇게 해야만 했는지...
당위성은 없어 보였지만 보스가 성규안인게 당위성이 되는 ㅋㅋㅋ
저는 당시 홍콩영화의 악역 하면 만자량이 생각납니다.
성규안은 외모가 그렇다쳐도 만자량은 서글서글 웃으면서 야비한 짓만 골라했죠.
오늘 인디필름인가 케이블채널에서 <엣날옛적 서부에서>를 해주더군요
다시 볼까하다 너무 길어서 엔니로 모리꼬네의 음악만 잠시 듣다 말았습니다^^;;
5 bluechhc  
천장지구.. OST가 정말 좋았던 기억이...
밴드가 아시아에서도 워낙 인기가 있었는데
일본 공연 중에 천장 조명이 떨어지는 사고로 보컬이 어이없게 세상을 떠났다는...
17 달새울음  
천장지구 OST는 라디오 영음에 신청해도 신청곡을 들을 수 없어서
비디오테입으로 녹음해서 매일 듣고 다녔죠.
몇 년후 중국음반들이 발매되면서 영화히트곡앨범으로 사서 들었슴다.
밴드이름이 비욘드였죠? 공연중에 죽었군요...
저는 엔딩곡으로 흐른 원봉영의 천약유정을 더 좋아했습니다.
5 bluechhc  
'영화이야기' 게시판에 '원봉영-천약유정' 포함해서 '천장지구'에 나왔던 노래들을 올렸습니다.
시간 나시면 한 번 들어보세요~~
2 유나시세  
추억의 영화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