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야기"를 꼭 봐야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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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이야기"를 꼭 봐야하는 이유

15 하스미시계있고 6 1353 1

영화를 보러가기 전에 사전 정보를 충실하게 조사하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런 정보 없이 영화관에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의 경우는 역사물이나 해당 국가의 정치, 사회적  배경 지식이 필요한 영화에 해당합니다.

최근에 본 <더 킹:  헨리 5세>나 <아이리시맨>은 관련 책을 좀 찾아보고 관람을 했습니다.

<결혼 이야기>는 별다른 정보없이 영화관에 불쑥 들어가 본 경우입니다.

노아 바움백의 영화고 스칼렛 요한슨과 아담 드라이버가 출연하는 영화라는 정도의 사전 지식이 다였지요.


영화를 보는 중에 정말 감탄한 것은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지만(헐리우드 영화 중에 남녀 배우가 감정을 들어내놓고 이렇게 엉엉 우는 영화도 드무네요)

배우의 연기를 정확히 포착하는 카메라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영화광 중에도 '좋은 촬영'하면 날아다니는 카메라를 예로 드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예컨대 스탠리 큐브릭이나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의 카메라 말입니다.

저는 보면 볼수록 그런 촬영에 거부감이 들더군요.

막대한 자본 투하로 만들어진 장비빨 느낌이 든다는 거지요.


마술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화려한 조명에 정교한 스토리텔링, 웅장한 음악, 최신 광학기술을 동원한 데이빗 커퍼빌드의 마술보다 소박한 카드 마술을 더 좋아합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의 마술을 위해 수십억의 돈과 수백명의 인력을 들여 다른 마술사들은 꿈도 꾸지 못하게 만드는 마술에 대해 저항감마저 듭니다.


그보다 마술사가 셔츠 소매를 걷고 카드 한벌을 들고 펼치는 마술. 오랜 숙련 과정에서 나오는 손놀림과 마술사의 입담만이 지배하는 마술에 훨씬 애정을 많이 느낍니다.

그건 테크놀로지와 자본이 지배하는 세계가 아니라 마술사의 기예와 관중과의 교감이 만들어 내는 (마법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촬영도 그런 것입니다.

촬영감독의 직관과 선택에 의해 포착되는 심플한 카메라.

30~50년대 고전 헐리우드 영화, 멀게는 무성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쇼트들이 제게는 더 와닿습니다.


<결혼 이야기>에서 놀랐던 촬영도 단순함에 있었습니다.

아담 드라이버와 스칼렛 요한슨의 말싸움 장면은 하나의 공간에서 아주 길게 찍었습니다.

중간에 잠깐 부엌과 옆방을 거치지만 거실 공간에서 다 찍었지요.

여기서 카메라는 움직여야 할 때와 멈추어야 할 때를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두 배우의 감정선과 동선을 흩트리지 않고 스나이퍼가 표적 을 솜씨좋게 맞추듯이 카메라는 수행냅니다.


싸움에서 감정이 격렬해지자 아담 드라이버와 스칼렛 요한슨이 핏대를 세우고 눈물을 글썽이는 지점에서 카메라는 어느새 클로즈업으로 넘어가있습니다.

이 과정까지 인물을 먼 쇼트에서 가장 가까운 쇼트까지 쇼트 사이즈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촬영은 천의무봉의 솜씨입니다.


영화가 끝나고 그 카메라의 명장의 이름이 떴습니다.

로비 라이언.

안드레아 아놀드와 켄 로치의 촬영 감독인 그 사람이 이 영화의 카메라를 잡았더군요.

안드레아 아놀드의 초기작부터 이 촬영 감독을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정보없이 영화를 보다가 허걱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혼 이야기>를 몇 번 더 볼 생각입니다.

이 영화를 몇 번이고 더 볼 이유는 많습니다.

결혼과 이혼에 대해 생각할 여지도 주고 배우들의 연기가 하나같이 뛰어나며 감독의 연출력도 익을 때로 익었습니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의 경우 제임스 설터나 레이먼드 카버의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여운 때문에 몇 번이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제게는 촬영도 이 영화의 반복 감상의 이유가 되겠네요.

혹시 보실 분은 심플한 카메라를 주목하시고 로비 라이언이라는 이름을 기억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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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24 umma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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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o지온o  
흠.. 선호하는 것이야 사람마다 다른 것이겠고..
자본의 힘이건 기교 높은 손놀림이건 각각의 장단점은 있는 것이니
선호할 이유는 있는 것이고
굳이 거부해야 할 이유까지는 없는 듯 합니다.
제가 선호하지 않는다고 다른 사람에게 거부해라고 강요한게 아닌데요.. ㅡ.ㅡ
그냥 제 취향을 이야기 한 것 뿐...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시는 건 아니신지요^^
16 o지온o  
하스미시계있고님이 그런 뜻으로 말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하스미시계있고님의 말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였다는 뜻도 물론 아니예요.

[보는 사람이 굳이 거부해야 할 이유까지는 없뜸] 이라는 말은 따로 덧붙인 말이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하스미시계있고님의 말을 [자본의 힘에 대한 거부]로 잘못 받아들였었다면 아래와 같이 말했을 거예요.
[보는 사람이 굳이 거부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라고 바로 물어봤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