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가 빛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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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주가 빛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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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티 드라마 방송 1회분을 보면서 동공은 안개속에 흔들리는 별빛처럼 불안했을 것이며
자꾸 옆구리(바깥쥔)를 흘깃 거리다 급기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렸다.
올커니!! 이런게 내놓고 방영하는 "19금" 이란 거구나!!
적당히 시간이 흘러 민망한 장면은 지났을 것이라 생각하며 화면앞으로 돌아온
내 예감은 여지없이 두부처럼 뭉게져 버리는 찰나 였다.

뭐 이따위 드라마가 다 있어?
1회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많이 궁금해졌다.

전문분야로 들어가면 더 그런 것일까.

경쟁이란, 남의 장점을 본받아 나를 업그레이드 시키는 게 아니라

나보다 한참 아래의 진흙탕으로 끌어 내려 푹푹 밟아 주는 것 이었다니...

최고의 여성앵커를 꿈 꾸던 고혜란(김남주분)의 혼전 연애와 농밀한 스킨쉽,
넌 아무것도 아니라 버린다는 이미지로 차버렸던 상대 남성이
최고의 스펙, 가문, 배경을 모두 갖춘 검사에서 국선 변호사로 자원한 남편 사이에
불안정하고 자극적인 존재이면서 한국인이 모두 열광하는 프로골퍼 케빈리로 귀국 한다.
케빈 리, 그 역시 아무 생각없이 한국에 온 것이 아니었던듯 4회까지 지켜보는 동안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쥐게 했던 만큼 비열하고 교활하게 고혜란을 교란 시킨다.
고혜란 뿐이 아니다.
뉴스나인 메인 앵커 오디션을 위해 귀하게 잉태했던 태아를 낙태 시키면서 까지 발을 들여놓은 자리 앵커,

그녀의 외적인 면모로는 볼 수 없는 가정의 불화를 긁어 부스럼으로 만들며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가버린 케빈 리.
"널 죽여버릴 거야"

너무나 뚜렷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내 뱉었던 그녀의 분노에서 나는 감전되는 느낌을 받았다.

일이 생기겠구나...
그녀의 폭언 그대로 케빈 리는 교통사고를 가장한 살해 방식으로 목숨을 잃는다.

그런 그녀의 일탈과 앙탈, 분노를 모두 싸늘하게 지켜보면서도 연민을 지우지 못했던 강태욱(지진희분)이

케빈리의 살해 제1용의자로 지목된 그녀, 고혜란의 변호사로 나설 것을 단호히 결심한다.

그것은 완성한 이혼서류를 찢어버린 후의 일이다.

 

매우 낮설고 이질적이며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고혜란 이란 캐릭터와 김남주 라는 배우의 묘한 크로스,
지독하게 냉소적 이지만 또한 누구보다 뜨거운 욕망의 얼굴이 두 사람 사이에서 정말 절묘한 매치를 보여주고 있다.

 

남이 안 하는 노력을 11년간 했던 경험이 나에겐 있다.

처음엔 벽을 짚은 채로 허리를 뒤로 꺽어 손바닥이 방바닥에 닿을 때 까지로 시작해서 4개월여 후엔

꼿꼿히 선 채로 허리를 뒤로 꺽어 바닥을 짚을 만큼 유연해져 있었고 다리찢기 전후 좌우 완성하기 까지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2년여의 잔혹하다면 잔혹하고 치밀하다면 치밀했던 세월을 나는 정말 차곡 차곡 가슴 안으로 끌어 들였다. 그리고 쌓았다.

그 후로는 공연을 이유로 학업을 수도 없이 빼 먹었으며 무대화장 이란 걸 지우지도 못 하고 버스에 올라 고개를 돌린채 집으로 돌아와

실신하듯 잠에 빠진 날도 셀 수 없을 정도다.

 

이 드라마를 보신 분은 한지원(진가주분)의 표독스러운 질투심을 기억할 것이다.

내 옆엔 고혜란과 복제인간 처럼 닮아있는 천재적인 춤꾼 마해일(소녀)이 있었고

그 당시의 집안 배경이나 경제력이 목재상을 경영하는 그녀의 집안에 비해 너무나 평범하기만 했던 내 집안은

이미 비교대상이 아닐만큼 거리가 멀었던 그녀와 나,

묘하게 그녀는 그런 나를 한지원 질투의 대상이었던 고혜란 만큼 미워하고 괴롭히며

내가 가지지 않은 것 조차 만들어 놓고 그것을 빼앗아 가는 모노드라마도 불사했다.

나는 비교되기 싫었고 그녀의 질투가 싫었으며 표독스럽지도 못한 행동과 마음으로 그녀에게서 비껴나가기 시작했다.

예원여중 실기에 응모했던 그녀는 입학했고 나는 물론 떨어져 기독교 사립여중에 입학했다.

그녀는 여중 졸업후 예일여고에 입학했으며 기숙사에서 보내오던 자조도, 반성도 아닌 손편지 몇 장을 끝으로

더 이상의 연락은 없었다.

나라고 왜 화가 나지 않았겠는가.

멀쩡하게 뚫린 입으로 나는 왜 그녀에게 고함을 지르지 않았을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원장님이 기억하는 연구생 그 누구보다 단 기간에 가장 많은 땀을 흘리며 손바닥과 손가락 마디에 울퉁불퉁 물집이 잡히도록 연습을 거듭 했고

연구소 한쪽 벽을 모두 차지한 벽거울에 내 연습복의 나풀거리던 소매와 치맛자락이 아직도 내 먼 추억의 뇌주름 사이에서 어른거리고 있으니 그런 것이다.

깃털과 반짝이가 다 떨어져 나간 분홍색 손부채와 뭉툭한 손잡이와 스텐 칼날 주변에 달린 짤랑이들이 내던 소리, 양면 탈과 소고, 오고,

전신에 뒤집어 써야하는 학의 모형속에서 극도로 공포에 질리면서도 벗을 수가 없던 나의 서글픈 오기가 자라고 있었으니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김남주가 연기하는 고혜란을 위해 기울였을 피나는 노력이 옛 명화극장의 장면처럼 내 앞을 스쳐간다.

나는 이 드라마의 끝이 더이상 궁금하지 않다.

몇 번은 더 19금의 플레이가 있을 것이며 지금의 내 나이로도 절대 이해나 용서가 불가능한 드라마속 한지원식의 투기와 음모, 모함들을 떠올리기도 싫다.

다만 나는  김남주가 가장 빛났던 순간으로 미스티 라는 드라마 속의 그녀를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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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ments
M 再會  
김남주 .... 이 드라마 시청중 얼마 지나지도 않아 생각한 것이 신인때 처럼 튀더군요........ 
지금까지 오면서 중간 중간 아줌마 역할도 많이 해왔던지라.. 깜짝 놀랐네요....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해왔는지 이 드라마 때문에 미리 관리를 한것인지.....
중간에 잠시봐서 어떤 내용인지는 모르고 ......
25 썸머와인  
가슴속에 고인 아픔이 무섭도록 많아 보이는 배역입니다.
관리야 아마추어 아니니 당연히 뛰어나겠죠^^
24 Hsbum  
19금이라고 하시니 봐야할 것 같은 느낌이... 
25 썸머와인  
다른 측면으로 보신다면야 얼마든지 강추 하겠지만..
S 맨발여행  
신인 때 변우민하고 나온 드라마는 기억이 납니다.
김남주가 울먹이며 "영웅아~" 부르던 모습이 생각나네요.
얼마 전에는 '한끼줍쇼'에 지진희하고 나왔더군요.
남의 집에서 술을 세 잔이나 연거푸 들이키는 모습은 별로였어요. 음...
25 썸머와인  
한끼를 전혀 안 보는 1人 이라 몰랐습니다 ㅎㅎㅎ
솔직히 김남주의 오기로 똘똘 뭉친 얼굴이 이제야 눈에 차기 시작했네요^^
이쁘다, 밉다가 아닌 특별함 이라고나 해야 할까요
34 Cannabiss  
잘 읽었습니다
영화감상평에 올려도 좋은 글이네요
25 썸머와인  
칸나비스님, 드라마라 영화쪽으론 생각도 못 해봤습니다^^
더우기, 저의 개인 경험담이 얹혀있는 글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