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로 마르첼로 [마틴 에덴] 각 장면들에 고즈넉한 기품을 배가시켜준 클래식 삽입곡들

영화이야기

피에트로 마르첼로 [마틴 에덴] 각 장면들에 고즈넉한 기품을 배가시켜준 클래식 삽입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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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멸과 사회모순의 20세기를 끊임없이 유영하려는 고독한 이야기꾼의 애환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마틴 에덴이라는 인물의 감정 양상이 비슷하게나마 닮아가는 저를 발견하게끔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아카이브 푸티지 영상과 블루톤으로 필터 처리된 필름 이미지들로

시간과 주인공의 내면 묘사 양쪽을 다 건드리고 센치하게 상기시켜주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네요.^^

글쓰기의 동력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던져주던 작품...


#1. Claude Debussy- Prélude à l’après-midi d’un faune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엘레나의 집에 초대받아간 신에서 흐르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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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laude Debussy - Suite Bergamasque Passepied 클로드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악기 키보드엘레나의 피아노 연주에 이어지는 나폴리 항구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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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Giuseppe Martucci: Notturno, Op. 70 No. 1 in G flat major 주세페 마르투치의 녹턴(야상곡) 


  지중해를 뒤로하고 우산을 쓴 두 사람~첫 키스 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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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과 엔딩 크레딧)

#4. J.S. Bach 3 Choral P.167 No.1 Lento Assai BWV 659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오르간을 위한 세 개의 코랄 전주곡 BWV 659'를 이탈리아 작곡가 오토리노 레스피기가 관현악을 위해 편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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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입곡명과 세부사항 요약은...

[출처- 알토미디어 측 소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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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Comments
(스포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원작을 다시 읽어보니 원작보다 영화가 훨씬 나았습니다. 영화에서 마틴의 주된 이미지는 바다입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떠나가는 엘레나를 이층 창문에서 바라보는 마틴의 얼굴 앞에 바다가 반사됩니다.
홀린듯 그가 찾아가는 것도 바다. 바다 사나이였던 마틴이 상류사회로 신분 상승하기 위해 몸부림을 칠 때 벽에 걸린 그림도 바다 그림이죠. 그것은 마치 바다(= 마틴 에덴)이 갇혀 있는 느낌을 줍니다.
후반부에 마틴은 대저택에  살고 있지만 문의 프레임을 통해 보여지기에 역시 자유가 억압되고 꼼짝달싹 못하는 느낌을 주지요.

초반에 유화를 보고 '멀리서 보니 멋진데 가까이서 보니 얼룩이네요 '라는 말은 후에 상류층으로 신분상승한 후 그가 느끼게 될 환멸감을 미리 암시하는 것과 같더군요.
소설은 타히티로 떠나는 바다에서 몸을 던져 자살을 택하는 대단히 암울하게 끝을 맺는데 영화는 마틴이 씩씩하게 바다로 돌아가는 것으로 마무리 되지요. 영화의 마지막도 현실적으로는 자살이겠지만 저는 영화의 엔딩씬이 훨씬 좋았어요.

재밌는 것은 유화의 '멀리서 보면 멋진데 가까이에서 보면 얼룩'이라는 말이 이 영화의 기법과도 유사하게 느껴집니다.
푸티지 필름이 군데군데 들어가서 영화의 흐름을 차단하는 얼룩처럼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맥락에 맞게 잘 조절되어 있으니까요.
또 한편으로 이 영화에서 이념적인 부분을 걷어내면 이 내러티브는 인어공주의 남성 버전과 유사하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추카추카 15 Lucky Point!

13 소서러  
(스포가 있습니다)

라스트씬이 맥락상 자괴감, 박탈감 끝에 석양의 빛 (이상향)을 보다가 자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저는 마틴이 어떻게 해야 될까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드넓은 20세기라는 대양에서
남아서서 저항의 작문을 정진해나가는 중도적인 방법을 택했다고 해석하고 싶었어요.
주위의 냉소적인 가쉽거리나 사회 모순이라는 거센 파도에 휩쓸리고 세게 부딫히지만 어쨌든 헤엄치는...
'어쨌든 간에 힘들고 빈곤한 사람들은 행복, 웃음 (=설리반의 여행)이 필요해'라는 잊어서는 안될 현 문화적 차원과
어줍잖은 희망 대신에 냉철한 현실을 말해야 한다는 중요한 쓴소리가 적절히 융합된, 인상적인 마무리라고 생각되네요.

하스미시계있고님의 예리한 감식안이 담긴 장문의 글은 이번에도 정말 흥미롭네요.
찾아내주신 초반부의 상류층에 대한 복선과 내러티브의 원형에 대한 새로운 해석 다 재밌게 읽었어요.^^
저렇게 장성해도 피폐한 인간상을 보면 역동의 시대에 등단이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해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잭 런던 소설 읽어보고 싶은데 곧 있으면 새로운 정본이 출간되겠죠?
참고로 시작부분에 나오는 아카이브 영상 속 할아버지가 피에트로 마르첼로가
존경하는 무정부주의자 "에리코 말라테스타"라고 하던데
다행히 이건 <국가 없는 사회-카페에서 만난 어느 아나키스트와의 대화>라는 책이 정발됐네요.
기회 될 때 한번 읽어봐야겠어요.
한편으로 이렇게 대위법이라는 작업 방식으로 내면과 시대 공기를 잘 건드린 연출자가
과거나 근래에 또 누구 있었나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 인상적이었네요.
에리코 말라테스타가 초반에 등장했기 때문에 마틴 에덴의 사상을 아나키즘에서 출발하여 자유주의자로 비뀌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게다가 마틴 에덴은 노동자 편에 있으면서도 독점 자본가의 논리인 사회 진화론을 신봉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합니다.
이것은 원작자 잭 런던이 가지고 있었던 혁신주의(progressivism)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죠.

남북전쟁 이후 미국은 자본의 독점이 심화되며 이에따라 노동자들의 노동착취가 무자비하게 진행됩니다.
이 시기 부르주아 인테리겐차 중에는 근로 대중의 열악한 형태를 고발하고 독점재벌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었지요.
다만 혁명에 의한 평등 사회가 아니라 개혁으로 오히려 자본주의의 지속적 발전을 꾀하는 방법을 택했으니 이를 혁신주의라 부릅니다.
어찌보면 사회주의적 변혁의  노선에 물타기를 했다고 할 수 있는데 독점재벌에 대한 노동자들의 불만을 개량적 누그러뜨린 뉴딜 정책도 이런 예에 속하지요.

영화에서도 마틴 에덴은 노동자를 지지하면서 사회 진화론을 신봉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혁신주의라는게 이탈리아의 역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나봅니다.
영화에서 자유주의자라고 마틴이 자신을 소개하니 저는 갸우뚱했습니다.
제가 과문해서 이탈리아 자유주의와 혁신주의가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지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한편으로 아나키스트 에리코 말라테스타의 푸티지 필름도 들어오니 아나키즘, 사회주의, 사회 진화론, 혁신주의, 자유주의가 어떻게 연관성이 있는지 아리송합니다.
이탈리아 자유주의와 미국 혁신주의의 유사성이 있다고 감독은 본 듯하고 에리코 말라테스타는 그가 존경하기에 초반에 그냥 삽입된게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공부를 해봐야겠어요.

p.s. 마지막에 마틴 에덴이 바다로 나아가는 장면을 죽음이 아니라 중도의 방법이라고 해석한 부분은 처음 볼 때 저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바닷가 한쪽에는 아프.리카 난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다른 편에는 유럽인이 서 있는데 마틴이 일어나서 바다로 헤엄쳐 가니까요.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퍼뜩 떠올린 생각이 '이념적으로만 말하면 최인훈의 <광장>, 로맨스를 가지고 말하면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남성버전'이라고 생각했죠^^
13 소서러  
저야 영화에 대한 감정을 공유하는 인상비평을 어떻게 잘 할지 고민하는데
하스미시계있고님은 관객들중에서도 여러 발짝 나아가서
사회정치학 텍스트를 곰곰히 생각해보는 넓은 견문과 눈썰미... 둘 다 부럽습니다.
영화관을 떠나도 의문과 탐색을 지속하는 정신을 매우 본받을 따름입니다.
저도 청년 마틴 에덴처럼 책들 사다가 탐독해서 세분화된 요소를 눈여겨볼 수 있도록
저도 소양을 좀 확장시키고 습득하고픈 욕구가 커집니다.

어떤 이념과 이즘에도 개인에 배제됐으면 의미가 없다고
원성을 부르짖은 개인주의자였으나 어떻게 보면 빠르게 활자와 지식을 흡수하고
집필들에 매진하며 여러 가치와 방황을 겪어보던 불순물 같은 존재였기에
어느 정도 아리송한 면모를 보인 게 아닌가 싶어요.
냉철하게 직시하나 적정히 가미할만도 한 희극적이거나 해학성
그 외에 은유와 상징이 담긴 시어의 본질... 이런 무드를 싹 다 뒤로 하고
거의 100% 날 것을 추구하는 리얼리즘을 선보임으로서
마틴이 엘레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과 비슷하게요.

그런 시점에서 개인, 사람이 분명 중요하되 결코 과잉되지 않으며
과대망상증으로 퍼져나가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에리코 말라테스타의 발언이
약간 의미심장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또한 마틴의 철학적 토대 형성에 도움이 된, 진화론적 사고실험을 창시한
허버트 스펜서는 이 젊은이에게 개인주의라는 결정적인 뿌리를 제시하게 된 인물인데
영화를 보다 보면 마틴은 자신이 동조심을 보인 사상의 한계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게 되고 갇힌 바 있죠. 결국 계급적 실천과 사랑 양쪽 다 힘들어졌지요.
따져볼만한 부분에는 논박과 비판도 해보고
드넓게 대안과 수용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작품의 경고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여러가지 여건의 힘든 굴레, 가난한 형편 속에서 고뇌하며 살아온
마틴에게 쉽사리 그런 비판을 던지기는 힘들다는 것도 참 생각이 많아지게 되는 바입니다.
또한, 명시인 보들레르가 부르주아 계급의 속물적인 모습을 경멸과 냉소로 비판하면서도
귀족주의적 태도를 취한 것도 그를 언급한 마틴이 부르주아적 지성과 교양에 눈을 뜨고
상류층 계급을 갈망하면서도 노동자 계급에 대한 연민과 지각을 바란다는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함이 느껴집니다.
어쨌든 통틀어서 이런 요점이 어쩌면 마틴이 쉽게 규정되기 힘든
정체성, 중간자적인 존재임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생각이 듭니다.

잭 런던이 사망하고 나서 시간이 흘러 총체주의, 스탈린 주의, 나치즘 같은 게 도래해서
세상이 한동안 어지러운 형국이었는데..
이 시기에 개인주의가 성장하면서 탄생한 '신자유주의'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았으나
1909년 9월에 출간된 이 소설의 존재 가치가 참으로 시사적이고 진보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는 기분입니다.
그래서 문학으로 하루빨리 음미하고 싶은 바람이 큽니다.
영화를 본 기억이 좀 많이 희미해졌는데 다음에 한 번 더 감상해봐야겠습니다.
제가 쓴 댓글에 개인주의를 자유주의로 잘못 썼네요.
여담으로 말한다면 <마틴 에덴>은 잭 런던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잭 런던이 부르주아적 삶을 갈망하면서도 노동자의 현실을 비판하는 글을 썼고 그 때문에 매문 작가라는 오명도 남겼습니다.
혁신주의라는 부르주아적 사회 개량에 머물렀다는 것이 그의 한계죠. 또 잭 런던은 대단한 인종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서구 중심적인 나이브한 지식인이었지요.
그는 소설처럼 자기 모순 속에 자살로 삶을 마무리합니다.
소설 <마틴 에덴>은 혁신주의가 가졌던 시대적 한계가 뚜렷한 소설이기에 오늘 날의 관점을 드러서 진보적인 것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이건 잭 런던 연구자들 상당수도 그런 입장입니다).
영화의 마무리를 중도적인 세상을 향한 힘찬 향해로 읽기가 무리가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영화나 원작이나 지배적인 내용은 마틴이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타락해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니까 그는 중도적 영역을 향해 행동하는 주체적 인물이 아니라 자본주의 계급적 모순와 이념 대립 사이에 내파되어진 희생양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중도적인 세계를 갈망하며 헤엄쳐간다는 것은 너무나 공허한 것이 되니까요.
저는 그래서 차라리 바다 사나이였던 마틴이 아무런 대립/이념이 없는 순수의 영역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영화 마지막에 보들레르의 시집을 든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은 사실상 그가 미친 것이고 바다로 뛰어든 것도 원작과 마찬가지로 자살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영화는 그걸을 아름다운 은유로 표현한 것일테구요.
현재까지 이 영화에 대한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13 소서러  
시계있고님의 최종 해석에 저도 동의하는 마음입니다.
2,3차적으로 더 곱씹다보니까 중도적인 방법의 탐색은
다소 부자연스럽고 엉뚱하게 느껴지네요.

자신의 애틋한 추억이 담긴 출생지이자 순수의 이데아와도
같은 바다.. 여러모로 육신이든 정신세계이든 종잡을 수 없던 자신을 떠내려보내는 것이
합당해보이네요.^^ 그러다보니 표류와 암초라는, 영화를 처음 보며
느꼈던 치열한 키워드가 분해되고 해방과 일탈이 각인되는 바이네요.
12 철판남  
자막을 구해야 감상하고 이런 글도 즐길 수 있을텐데...T_T
그러고보니 드뷔시의 곡을 두개나 사용하면서 영화 이미지에 맞는 <바다>도 넣을 수 있었을텐데 뺀게 신기하네요. 전체적인 톤이 안맞았나 봅니다.
13 소서러  
말씀해주신대로 잘 어울리는데
감독님께서 두 곡이면 더도 덜도 아닌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하셨나봅니다...ㅎㅎ^^
그나저나 주세페 마르투치 음악.. 정말 감미롭고 애잔한 화음이 매우 마음에 드네요.
앞으로 더 찾아서 들어봐야겠습니다.
22 bkslump  
취침용으로 클래식 틀고 자는데... 좋네요 ㅎㅎ

추카추카 12 Lucky Point!

3 장산해운대  
봉준호 감독이 차세대 감독으로 꼽은 20인 중 한 명.
네이버 영화에 있으나 다운로드료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고 있습니다.
11 darkface  
"마틴 에덴" 영화정보 얻어갑니다
감사합니다
3 베어브릭  
와... 입이 안다물어 지네요,
사실 그 동안 자료만 받아가느라 사이트를 제대로 안둘러 봤거든요.
너무 유익한 글들이 많네요. 특히 '소서러'님 이 글은 전문성이 확연히 느껴지네요.
앞으로도 '클래식' 종종 가르쳐 주십시요. 그리고...
소서러가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그 소서러인가요?
제가 그 영화 너무 좋아하거든요.
13 소서러  
전문성이라니요 과찬이십니다..+_+^^
음악 선곡리스트와 가벼운 설명들은
모두 배급 회사 홍보자료에서 따온 겁니다..ㅎㅎㅎ
소서러는 제가 높이 사는 그 프리드킨 영화 맞아요.
가입할 때 더 마음에 드는 마땅한 닉네임이 안 떠올라서
그냥 이걸로 정했는데 곧 바꿀까 생각 중입니다.
힘이 되는 칭송 댓글 고맙습니다.^^
40 백마  
영화중에 삽입곡들이 없다면 극대감이나 잔잔한 감이 없죠.
20 암수  
많이 기대가 되는 작품이네요...
영화감상에 있어 한층더 풍미를 더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13 소서러  
즐감하세요.
각본의 이음새 부분에서 좀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문학이라는 포부를 어꺠에 메고 표류하는 격정적 사내를 잘 연기한
루카 마리넬리의 호연과 영화 매체의 우연성, 시대의 초상 (플래시백)과 어우러지는
정통 이탈리아 영화적 시도를 인상적으로 잘 담아낸 수작인 것 같아요.
14 Harrum  
이 영화를 보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장면과 음악에 갇혀 있어요.
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입니다.
요즘 영화 몇 편의 음악과 장면이 흔들어 놓네요.
이러다 정신줄 놓을 것 같아요. 흐흐.
13 소서러  
시네마즘의 은밀한 매력에 깊숙이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면
기분이 참 좋죠. 으흐흐

포만감에 대한  활달하고 벅찬 인간의 아름다운 자연 현상입니다..ㅎㅎㅎ
경쾌한 이탈리아 팝뮤직에서 점차 클래식 뮤직으로
작가로서 센치해지는 마틴의 감각을 무의식적으로
표현한 감독, 제작진의 선곡이 인상적일 따름..^^
27 오큰실드  
좋은글 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