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인의 흑도 (聾啞劍 AKA. Deaf and Mute Heroine, 1971)

영화이야기

13인의 흑도 (聾啞劍 AKA. Deaf and Mute Heroine, 1971)








우마 감독의 1971년작 <농아검>의 오프닝 입니다.

마치 정글에 온듯한 강렬한 퍼커션 리듬에, 주인공 농아여인의 비정한 칼부림이 그루브를 타듯 춤을 춥니다.
눈과 귀를 깨우는 감독의 압도적인 연출력은 2분20초 약41개 컷팅으로서 추상과 구상을 오가며, 마치 표현주의 회화처럼,

시네마의 순수한 형식을 보여줍니다.

롱샷에서 시작합니다. 도적떼가 오른쪽 프레임으로 들어오면,

카메라는 왼쪽으로 트래킹하여 주인공(마해륜) 농아여인을 퀵줌으로 인(in)하여 미디엄샷으로 프레이밍함과 동시에 강렬한 1점조명으로 비정한 표정의 그녀를 비춥니다.

그녀가 왼손으로 칼을 치켜들고 오른손으로 칼을 뽑아 겨누면, 커팅되어 화면가득 긴 칼이 클로즈업되고 제목이 뜹니다. <Deaf Mute Heroine>

이제 그녀와 적들과의 군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짙은 핏빛의 오렌지색을 배경으로 실루엣의 1:多의 칼부림 군무가 고정카메라 평각의 익스트림롱샷으로 추상화됩니다.

(이 샷은 아마도 롱테이크의 마스터샷일텐데, 이 샷 하나만으로도 멋진 오프닝이었을겁니다)

여기에 매우짧은 컷들, 미디엄-클로즈업-빅클로즈업샷의 1:1 액션장면들을 빠른편집으로 구체화합니다.

실루엣처리된 롱샷의 추상성과는 달리, 분절된 짧은샷들은 조명을 키고 적을 찌르고 베고 피가 날리는 잔인한 장면으로서 대비를 또 리듬을 만들어 강조합니다.

시퀀스의 끝은 시작과 수미쌍관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적을 내려찔러죽이고 피가솟구치고 칼집에 긴 칼을 넣는 농아여인의 미디엄샷에서 퀵줌-아웃(out)하면,

도적떼들의 시체를 부감의 롱샷으로 대조시킵니다. 그녀만이 서있고, 서있던 적들은 모두 널부러져 쓰러졌습니다. 동시에 음악도 꺼집니다. 라스트 레이디 스탠딩.
감독은, 이처럼 추상적인 롱샷의 정(靜)과 구체성으로서의 미디엄-클로즈업샷인 동(動)의, 대비와 합일로서 표현주의적 연출의 끝장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괴작이자, (농반진반) 걸작입니다. 원래 대놓고 개기는 놈들, 거짓말도 크게 하는 놈들, 확신범들을 무시 못하듯이, 이 영화가 제게는 그런 케이스입니다.
비디오로 예전에 출시되었나본데, 현재는 독일에서만 디비디로 출시된 그야말로 레어필름입니다. 그래도 유튜브로 저화질이나마 풀버전을 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근데 왜 모든 등장인물이 독일어 혹은 이태리어를 쓰는지, 이마저도 컬트입니다.

링크한 오프닝을 보신분은 눈치체셨겠지만, 본편의 연출과 플롯은 그야말로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오프닝에서의 그녀의 초인같은 괴력과 중력을 무시한 액션, 정교한 연출인듯 정교하게 어긋난 숏, 그 숏과 숏을 그냥 붙여버리는 태연함 혹은 대범함은

본편에서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연속편집의 혁명이랄까, 논리의 비일관성이랄까, 컷이 안붙어도 그냥 붙입니다.

오프닝 마지막에 적들의 파우치에 담긴 진주를 바닥에 버리고 길을 떠난 그녀는, 실은 그녀가 진주를 가지고 있고,

독자들은 진주를 둘러싼 어떤 전사가 있을거라 예측하고 영화를 보지만 실은 그냥 맥거핀이였습니다.

오프닝의 비정한 표정으로 적들을 물리친 그녀의 행로가 잔혹한 하드보일드의 검술활극이 될거라 예측했다면,

영화 중반 한 사내를 만나 청순가련형의 여인네로 180도 변신하여 꽤나 긴 런닝타임을 할애하는것을 견뎌내야하기도 합니다.

물론 장철의 <금연자, 1968>을 연상시키는 풀숲에서의 대결이나, <복수, 1970>의 모든 등장인물들처럼 비열하고 야비한 속임수만을 쓰는 악당들과 건조하고 하드보일드 배경이 연상되긴 합니다.
특히, 조무라기 남성부하들을 거느리며 오직 기만과 탐욕으로 권력과 술수를 행사하는 도박장의 여두목은 무술고수이자 팜므파탈 캐릭터로서 극의 이끄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물론 주인공의 황당한 (그러나 진지한) 기지에 살해당하는 비운을 겪지만요. 물론 이 사생결단 대결의 종잡을 수 없는 기상천외한 감독의 연출은 비판금지입니다.

그리하여, 한밤에서 한낮으로의 시간의 점프나, 산속 깊은곳에서 갑자기 바닷가로 대결장소가 바뀌는 공간의 점프는,

이쯤에서 감독의 초월적 연출의 경지로서 존경과 경외를 보내지 아니할수없게되는 것인 것이었던 거였습니다. 걸작이라 아니할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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