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바다를 출렁이게 하는 기적(빔 벤더스 감독, )

영화이야기

음악이 바다를 출렁이게 하는 기적(빔 벤더스 감독,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영화와 음악은 시간의 진행에 따라 흘러간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운동성과 시간성을 가진 이들을 글로 설명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빔 벤더스 감독의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1999)이 한 장면을 이야기 할려고 동영상 클립과 스틸 샷을 동원해봤습니다.

진행되는 전체 영화에서 이 장면만 떼어서 제가 느낀 감흥을 설명하려는데 제대로 전달될지 모르겠습니다.

영화와 음악에 흠뻑 취한 상태에서 해야할 이야기를 눈치 없이 끄집어 내는 것일수도 있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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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영화의 전당을 오가며 빔 벤더스 기획전을 보고 있다.

오랜만에 본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은 디지털 복원판이지만 필름으로 봤을 때와 맛이 전혀 달랐다.

복원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화면의 깊이가 사라지고 밋밋해진 느낌이다.


영화가 공개된 후 잊혀진 아티스트를 추적하는 아류작 다큐들도 많이 나왔다.

<서칭 포 슈가맨>(2011),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2013) 같은 작품들이 그것이고 최근에는 TV 예능 <슈가맨>까지 나왔다.

아류작들이 훨씬 자극적이어서 그런지 다시 본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은 내용도 싱겁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이 영화를 통해 새삼 느낀 것은 벤더스의 영화는 음악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독일 주둔 미군을 대상으로 한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락 뮤직에 심취했던 벤더스.

<시간의 흐름 속에서>(1976)에서 나오는 '양키가 우리들의 무의식마저 식민화시켰다' 말은 영화 대사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벤더스의 청년 시절을 잘 드러내는 말이라 할 것이다.


그의 초기 영화에 대해 많은 평론가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지적하는 서사의 빈약함이라는 것도 벤더스 영화의 음악적 특징과 관련이 있다.

벤더스는 이야기로 영화를 진행시키기 보다는 이미지를 음악처럼 활용해서 흘러가게 하는 점에 발군의 능력이 있다.


미국에서 할리우드 배우와 함께 만든 <돈 컴 노킹>(2005)을 보면 길가에 버려진 소파에 앉아있는 샘 셰퍼드를 중심으로 카메라가 5분 동안 빙글빙글 돌아가는 장면이 있다.

영화 속의 시간으로는 한낮에 시작된 이 카메라의 회전은 늦은 밤이 되어도 멈출줄 모르고 수많은 디졸브로 이미지를 이어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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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소파 주위를 처음 돌기 시작할 때 바람 소리인지 파도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어디선가 들린다.

어찌보면 여기서 카메라의 움직임은 바람이나 파도 같기도 하다.

또 그렇게보니 소파 위에 앉은 샘 세퍼드는 난파되어 구명보트에 간신히 몸을 의지하고 있는 생존자처럼 보인다.

(이 장면은 태어난지도 몰랐던 아들을 찾아 온 헐리우드 난봉꾼이 아들에게 문전박대를 받고 난 뒤에 나온다).


신비롭기까지한 이 카메라의 움직임은 이번에 다시 본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에서 이미 사용된 적이 있다.

벤더스는 인물에 정서적으로 접근을 할 때 마치 음악이 인물을 휘감듯이 카메라를 움직인다.

디지털로 복원된 화질에 심술이 나서 영화 감상 보다는 쿠바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있던 내가 놀라 앉은 자리에서 허리를 곧추 세운 장면은 다름 아닌 다음 장면이다.

(영화가 시작된 지 1시간 18분이 되어가는 지점이다. 내가 찾은 유튜브 동영상 클립은 아래 스틸 샷으로 설명하는 부분보다 조금 뒷 부분에서 시작된다)


빔 벤더스의 오랜 친구이자 음악 프로듀서인 라이 쿠더가 쿠바 뮤지션을 만나게 된 에피소드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라이 쿠더는 비행기 기내에서 헤드셋을 쓰고 있는데 마치 그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듯 이 다큐는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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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 쿠더의 독백이 이어지면 카메라는 지상으로 내려와 바닷가의 건물들을 따라 움직인다.

이때 비행기 안에서 쿠더가 듣던 음악은 사라지고 파도 소리가 화면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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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저편에 쿠더의 모습이 보이자 새로운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쿠바 뮤직의 특성인 타악기 위주의 음악이다.

거만하게 앉아 시거를 문 라이 쿠더를 향해 스테디캠이 다가선다.

음악 소리가 점점 빠르고 선명하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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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카메라의 움직임을 유심히 볼만하다.

음악에 심취해 있는 라이 쿠더 뒤를 돌아서 카메라가 접근해서 90도를 꺾으면서 퍼커션 연주자들이 등장한다.

여기서 카메라는 어떤 기능을 하는가?

스틸 샷의 자막을 읽었다면 이 영화가 라이 쿠더의 에피소드와 그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가 쿠바 뮤지션을 발견한 놀라운 경험을 영화는 따라가고 있다.

좌측으로 꺾인 카메라를 통해 화면에 들어오는 뮤지션들.

라이 쿠더의 과거 속 경험을 현재의 카메라가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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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카메라는 춤을 추듯이 뮤지션 한명, 한명을 따라가며 테라스를 횡단한다.

카메라가 다시 저 쪽 뒷편의 라이 쿠더부터 쿠바 뮤지션을 풀로 잡다가 살짝 틀면서 바다를 비출 때 경탄할 만한 장면이 나타난다. 

(동영상 클립으로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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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악기에서 울려퍼지는 소리가 바다의 파도를 건드리면서 수평선 저편까지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

​아니, 음악이 파도로 변하고 소리가 시각으로 둔갑을 한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 될지 모르겠다.

이때 나오는 대사가 하필 '평생 한번 겪기 힘든 귀한 경험이었다'인데 정말 시청각적으로 귀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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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씬은 스테디캠의 움직임만을 사용해서 롱테이크로 찍었다.

씬의 마지막을 수평선을 보여주다가 항공 촬영을 한 LA 밤 하늘로 넘긴다.

이제 쿠바 뮤지션들이 LA에서 공연하는 장면을 보여줄 것이다.


그런데 쿠바 바다에서 LA의 밤 하늘로의 연결은 마치 쿠바 뮤직이 파도를 타고 넘어가 아메리카에 도착하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잊혀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뮤지션을 찾아내서 그들의 예술혼을 세계에 알린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그 기적을 카메라의 리듬과 편집으로 연결시킨 이 장면도 내겐 영화적 기적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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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15 암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당시 우리나라 사람에게 쿠바는 ...카스트로 장기집권으로 정치적으로 거의 북한과 동일시하던 시기로....
야구와 복싱의 강국정도로만 인식되었지 아바나의 밤거리라던지...예술, 음악적으로 이토록 풍부하고도 매혹적인 감성이 있는줄은 아는 사람만 알던 시절이었죠...
이 다큐로 인해 우리나라에도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에 대한 열풍이 불었던 기억이 나네요...
더불어 쿠바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도 급상승했었구요...
15 암수  
바빠서 빔벤더스 기획전 한편도 못볼 듯 합니다...
그나마 <이세상 끝까지>는 "몬테"님의 수고로 집에서나마 볼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오즈야스지로 추억더듬기 <도쿄가>와 니콜라스 레이 추억더듬기 <물위의 번개> <멀고도 가까운> 이세편은 다음기회를 봐야할 듯 합니다...
댓글이 없어서 뻘쭘했는데 암수님의 댓글 덕분에 마음이 놓입니다^^
저 영화 덕분에 쿠바 시가가 세계 최고라는 것을 알았고 위스키 안주로 시가가 잘 어울린다는 것도 덤으로 배웠죠. ㅎ
10 Harrum  
전 이 영화는 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늘 음악만 들어요.
많이 뭉클하거든요.
감독의 시선에 동의하지 않지만 말려들지 않을 수가 없어요.
쿠바에, 아릿한 음악가들에, 아프로쿠바 음악이니...

좋은 곡,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