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꼭 봐야 할 한국 영화

영화이야기

지금 꼭 봐야 할 한국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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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화관엘 갔다가 알고 지내는 영화 평론가와 만났다.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래도 시네필이 만나면 꼭 물어보는 이야기가 있다.

약간은 상투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최근에 본 최고의 영화는 무엇입니까?'


몇 개의 리스트들을 서로 주고받다가 상대편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다.

'요즘 인기 있다는 그 영화 봤어요? 기본적으로 쇼트를 못 찍는 감독의 영화더라구요. 아예 기본기가 안된 사람인데 영화를 만들고 있으니...'

나는 그냥 그 감독의 처음 작품을 보다가 중간에 나왔다는 말로 대답을 했다(굳이 영화 제목은 말하지 않겠다).


그냥 서먹하게 돌아서는데 영화 하나를 쓰윽하고 찔러준다.

놓쳐서는 안될 영화라는 단서를 달면서.

<작은 빛>. 조민재라는 처음 들어보는 감독의 영화다.


며칠 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이 영화를 봤다.

코로나 바이러스 탓인지 영화관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객석에는 마스크를 낀 사람도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었고 나는 멍하니 이 영화를 보고만 있었다.


동맥류 수술로 기억이 사라질지 모르는 위기에 처한 남자의 이야기다.

남자는 서른 여덟이고 선반 작업을 하는 노동자이며 결혼을 하지 않았고 주변에 사귀는 여자도 없다.

이 남자는 사라질지 모르는 기억을 잡기 위해 캠코더로 일상을 찍는다.


흔해 빠진 이야기.

아마 스토리를 미리 봤다면 절대 보지 않을 영화였을테지.

그만 보고 나갈까 말까를 고민하는데 내내 발목을 잡는게 있었다.


이 감독은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감정에 호소하지 않는다 것.

서사를 앞으로 들어내기 보다는 관객에게 행간을 읽게 만드는 신인 답지 않은 능력.

카메라는 대상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가도 딱 필요한 지점에서 필요한 길이만큼의 클로즈업을 사용하는 절제력.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의 기억의 기록이 아닌 가족의 기억으로 전환되며 그것이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화해의 문제로 이어질 때

조윤재라는 이름을 머리 속에 계속 되내이고 있었다.


영화는 가족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편린을 따라 가다가 아버지가 남긴 기억과 조우하게 되는데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전반부를 부수어 놓았다.

그러다보니 주인공이 기억 속을 더듬는 과정과 관객이 서사를 맞추어 가는 과정이 동일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놀랍게 다가온다.

다만 감독이 좋아한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분위기가 조금씩 보인다는게 약간 아쉽기는 하다.


조윤재 감독은 노동 현장에서 일을 하며 2천만원의 퇴직금으로 자서전적인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훌륭한 것은 그의 영화가 관념에 기대어 있지않고 노동 현장에서 얻은 경험의 내공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무주 산골 영화제 이후 무수한 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윤재 감독은 영화 만들 돈을 모으기 위해 호주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 데뷔작을 꼭 봐야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미래의 거장이 지금 우리 곁을 스쳐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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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S 토마스모어  
쓰신 내용만 봐도 너무 흥미로워 보이지만
너무 가슴이 아플것 같아서 못 볼것 같습니다.
영화는 생각보다 담담하게 찍었습니다.
나중에 곱씹으면 아련한 아픔이 베어나오는 그런 영화죠.
S 컷과송  
선반공 역할의 주연 배우가 제가 가입한 카페 회원이라서 극장 개봉날 감상했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보다는 가와세 나오미를 말씀하시는 분들이 더 많았지만,
저로서는 카메라가 어디에 있어야 인물들을 배웅할 수 있는지 알고있는 휴머니즘이 좋았습니다.
고레에다와 가와세도 그렇지만 허진호의 <8월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도 살짝 느껴졌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부분은 아버지 양복을 입고 촬영을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엄마와 모델이 된 아들, 그 아들 위로 겹쳐지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
아버지를 어떻게 등장시킬까를 주목하고 봤는데 처음에는 양복으로 마지막에는 유골로 등장시키는 지점이 놀랍더군요.
S 컷과송  
저는 공장의 어둠 안에서 카메라가 밖의 빛 속으로 나가는 인물을 지켜보는 선택이 좋았습니다.
11 작은막걸리  
쪼~크발이 영화인가~~~~
등장이름이~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