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꼼하게 읽기(3) - 영화 속의 소도구는 무엇을 말하는가?

영화이야기

<블러드 심플.> 꼼꼼하게 읽기(3) - 영화 속의 소도구는 무엇을 말하는가?

12 하스미시계있고 9 351 2 0

5a84fd0e7506f4ae388cdd6d91523258_1574056004_6061.jpg
 

5. 무기(weapon)

영화 초반.

애비는 비가 억수 같이 오는 날 집을 나와 휴스턴으로 가는 길이었다.

그날 밤 ​애비는 동행한 레이와 잠자리를 하게 되고 이튿날 모텔에서 두 사람은 마티의 전화를 받게 된다.

그 뒤의 애비의 행동이 이상하다.

남편의 전화를 받고 난 뒤 상황의 심각성을 알게 된 애비는 휴스턴으로 가지 않고 자신의 소지품을 챙기러 집에 들른다.

왜 에비는 휴스턴으로 가출을 시도한 전날 밤에 물건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을까?

여기에 대한 질문은 이렇게 수정 되어야 한다.

애초 애비와 레이가 잠자리를 하게 된 상황이 우발적인 것이었을까? 계획적인 것이었을까?

 

첫 번째 가정.

애비와 마티는 부부 싸움을 했고 화가 난 애비는 집을 나와 비오는 밤에 휴스턴으로 향한 것이다.

이때 애비의 가출은 부부간의 완전한 결별을 의미할 만큼 심각한 것이 아니었을 수 있다.

 

으레 있는 부부 싸움 정도였을 것이다.

그래서 애비는 엉겹결에 집을 뛰쳐나왔기에 짐을 제대로 챙겨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운전을 하던 남편의 종업원 레이의 좋아 한다는 고백을 듣고 충동적으로 잠자리를 한 것이다.

 

다른 가정.

만약 애비가 우발적으로 집을 나온게 아니라면 어떨까?

애비는 레이를 유혹하기 위해 (부부 싸움을 핑계삼아) 일부러 휴스턴으로 동행을 제안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레이의 고백에 애비는 너무 쉽게 모텔로 직행을 권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이 두 번째의 가정대로라면,

<블러드 심플>이 필름 느와르의 형식을 가져왔지만 팜므 파탈을 등장시키지 않는다는 기존의 평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미루었다가 이야기를 하자.

 

마티의 집을 들른 두 남녀.

애비는 침실에서 자신이 들고 갈 소지품을 챙기고 레이는 거실에서 당구를 치고 있다.

여기서 화면에 잡히는 소품들에 시선을 집중해보자.


5a84fd0e7506f4ae388cdd6d91523258_1574056059_4834.jpg  

거실 당구대 너머로 보이는 박제된 곰과 멧돼지는 마티가 평소 사냥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임을 알려주는 정보다.

마티가 사용하는 총은 영화 내내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애비의 진술을 통해 그가 첫 번째 결혼 기념일에 아내에게 진주 손잡이로 된 38구경을 선물했을 만큼 총기 애호가다.

   

<블러드 심플>에서 총은 남성 성기의 대체물이라는 관습적 상징에 분명히 의존하고 있다.

이를 염두에 두고 보면 마티는 성불구로 여겨진다.

다음과 같은 장면 때문이다.

마티와 애비의 침실에는 부부의 사진은 보이지만 아이의 사진은 없다.

아이 대신 그들 곁에 있는 것이 (아마 마티가 사냥을 할 때 동행 했을) ‘Opal’이라는 이름의 셰퍼드이다.

‘opal’‘oral’의 변용으로 두 사람 사이에는 구강 섹스로만 성생활이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마티가 결혼 기념일에 아내에게 권총을 선물했다는 것은 그가 섹스를 포기했다는 것인데,

총이 남성 성기의 대체물이라고 할 때 그녀가 받은 것은 어떤 의미에서 딜도를 받은 것이 된다.

 (마티가 성불구이거나 성적 매력이 덜한 남자라는 것은 애비와 레이의 불륜 현장을 찍은 사진을 본 뒤에

종업원 모리스와 대화를 하던 손님 데보라에게 수작을 하다 실패하는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거실에서 당구를 치며 애비를 기다리는 레이의 모습은 어떤가.

 

5a84fd0e7506f4ae388cdd6d91523258_1574056238_2853.jpg
큐대를 들고 있는 레이는 발기한 성기를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심지어

그는 (아이가 없는) 부부의 사진을 보며 자신의 사장인 마티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과시적 성기와 성 불능의 극단적 대비를 보여주는 장면은 인물의 갈등이 고조되는 장면에서 두드러진다.

 

먼저 방갈로 씬.

레이의 방갈로에서 잠을 깬 애비는 마티에게 기습을 당한다.

마티에게 끌려 숙소 바깥으로 나온 에비는 마티의 손가락을 깨문다.

 

5a84fd0e7506f4ae388cdd6d91523258_1574056269_2333.jpg
기습을 당한 마티는 고통에 무릎을 꿇고 뒤이어 잠에서 깬 레이가 바깥으로 걸어 나온다.

그의 바지 위로 불룩하게 솟아 있는 리볼버.

두말 할 필요도 없이 깨물린 손가락은 거세된 성기이며 바지 위로 나온 총은 발기한 성기다.

 

보넬 산 씬.

수모를 당한 마티가 비셔에게 살인을 의뢰하러 보넬 산(Mount Bonnell) 주변을 방문한다.

그 때 화면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핑거 스프린터로 고정된 마티의 손가락.

주변에서 맥주를 마시던 10대들이 마티를 보고 조롱을 한다.

 

5a84fd0e7506f4ae388cdd6d91523258_1574056307_7736.jpg
아저씨, 어쩌다가 그 손가락을 부러떠렸나요?”

(Hey mister, how'd you break your pussyfinger)

어떤 손가락?

pussyfinger.

푸시 핑거는 집게손가락(index finger)의 속된 표현이다.

다시 말하면, 마티의 잘려진 손가락은 페니스의 대체물인 것이다.

 

5a84fd0e7506f4ae388cdd6d91523258_1574056325_0835.jpg
비셔의 차 안에서 마티가 젖꼭지에 불이 들어오는 인형의 불을 끌 때도

핑거 스프린터의 손가락이 화면에 드러내면서 마티의 성불구를 재차 시각화한다.

 

 

비셔의 총에 맞아 마티의 피가 핑거 스프린터에 흘러내리는 장면은

발기 불능의 페니스가 정액이 아니라 썩은 피를 내뿜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젊은 남자의 성기와 늙은 남자의 성기라는 보다 적극적 대비는 생매장 씬에서 드러난다.

 

5a84fd0e7506f4ae388cdd6d91523258_1574056354_7375.jpg
아직 죽지 않은 마티를 한밤중에 묻으려는 레이.

레이가 땅을 한참 파고 있을 때 마티는 자신의 주머니 속에 있던 총(애비에게 결혼 기념식 선물로 준 그 총)을 빼서 레이에게 겨눈다.

마티가 방아쇠를 당기지만 발기하지 않는 그의 성기와 마찬가지로 총은 발사되지 않는다.

격발되지 않은 총을 레이에게 뺏기는 마티의 모습은 굴욕적이기까지 하다.

 

총과 관련해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총이 운명처럼 인물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애비가 어두운 차 안에서 레이에게 하는 말.

 “저는 이 총을 (마티에게) 사용하기 전에 여기를 떠나고 싶어요”.

이 소원은 반은 성취되고 반은 이루어지지 않는데,

그녀의 바람과 달리 결국 총을 쏘게 된다는 점이고 그 총알이 남편을 맞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소원은 이루어진다.


5a84fd0e7506f4ae388cdd6d91523258_1574056387_589.jpg
운명은 총알 개수와도 관련이 있다.

애비가 처음에 가지고 있던 총알은 세 발이다.  

세 발의 탄환의 수에 맞게 세 남자가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

게다가 레이의 자동차 뒷좌석에 묻은 핏자국을 숨기려고 덮어 둔 타올 위로 핏자국 세 개가 올라는 오는 장면은 얼마나 섬뜩한 암시인가!

 

총이 남성 성기를 뜻하는 것이라면 애비의 화장품 컴팩트를 여성 성기의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도 대단히 관습적이다.

 

5a84fd0e7506f4ae388cdd6d91523258_1574056426_4319.jpg
다시 방갈로 씬. 마티의 기습을 받은 애비가 떨어뜨리는 것은 조개 모양의 컴팩트다.

입을 벌리고 있는 조개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은 따로 설명할 필요 없겠다.

애비의 불륜을 이처럼 너무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 컴팩트도 무기라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장면이 있다.

애비는 남편 마티의 사무실에 들렀다가 깨진 유리 창, 흩어진 서류, 타올에 감싼 망치, 찌그러진 금고 등을 목격한다.

 

정황 증거를 통해 그녀는 정부 레이와 남편 마티 사이에 심한 몸싸움이 있었고

그 결과 레이가 마티를 죽이지 않았을까 의심을 하게 된다.


5a84fd0e7506f4ae388cdd6d91523258_1574056457_9234.jpg
그 다음 임시로 머무르는 아파트에 돌아온 애비는 침실에서 마티의 망령을 보게 된다.

침실에 앉아 있던 마티의 유령이 그녀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하며 컴팩트를 던진다.

당신은 무기를 남겨두고 갔더군!(You left your weapon behind)”

 

이 말은 참 이상한 말이다.

만약 마티가 제대로 방문을 했다면, 자신에게 총을 먼저 쏜 비셔를 방문했을 것이다.

그 경우, 마티는 라이터를 던지며 당신은 라이터(또는 증거)를 남겨두고 갔더군!”이라고 해야 한다.

 

아니면 그에게 두 번째 총을 쏘고 생매장을 시킨 레이를 찾아가 리볼버를 던지며

당신은 무기를 남겨두고 갔더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레이는 권총을 남겨두지 않았다.

 

지금 마티는 자신에게 총을 쏜 두 남자를 찾은 것이 아니라

애비를 찾아가 무기를 남겨두고 갔다하면서 컴팩트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이 꿈은 애비의 꿈이다.

애비는 꿈에서 자신을 자책하고 있다.

자신의 무기인 성기(조개 모양의 컴팩트)를 이용해서 레이를 유혹했기 때문에 죽은 마티가 방문한 것이다.

여기서 맨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애비와 레이의 하룻밤은 충동적인 것이었을까? 애비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을까?

 

애비의 꿈을 통해서 짐작해보면 그녀는 자신의 육체를 무기처럼 사용했기에 레이와의 불륜은 계획 하에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성불구이기에 다른 남자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렇기에 남편 마티는 비셔에게 그녀의 행실을 염탐하게 했을 것이다.


애비는 느와르 영화의 전형적인 팜므 파탈이라고 할 수 없을지라도 그 범주에서 완전히 벗어난 캐릭터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의 두 가지 무기, 리볼버와 컴팩트는 그녀의 가방에서 나왔기에...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 신고
 
9 Comments
예상보다 해야 할 말이 많다보니 글이 점점 길어집니다.
또 다른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가겠습니다.
13 o지온o  
이번 글도 읽기에는 소소한 재미가 있는 글이었습니다.
조개 종류가 저에게는 가리비로 보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성 상징으로 가리비를 쓴 이유가 뭘까 살짝 궁금해지기는 해요.
가리비 대신 전복을 썼다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지만, 화장용구를 전복처럼 만들 이유는 딱히 없겠죠.
생물은 전공이 아니라 그냥 조개류(貝類)로 퉁치겠슴돠~
12 암수  
상당히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영화를 그냥 봐서는 읽어낼수 없는 것들인데......이 영화를 보는 풍족한 시각을 선사해주시는군요......
하스미 시계있고님이 점점 하스미 시게이코화 되는 것 같습니다 허허..
재밌었다니 감사합니다.
저는 그낭 시계있고지요. 시계가 갈 때 착각, 착각하면서 소리를 내는데...
저는 착각 속에 살아가는 시계있고랍니다^^
S umma55  
어떤 착각 속에 사는 시계이신지 궁금합니다.
갈수록 흥미진진합니다.
한국의 어떤 영화평론가라도 쓸 수 없는 좋은 글입니다!!!
과찬이지만 제가 존경하는 umma님의 칭찬이라 기분이 좋습니다^^
어쨌든 글은 완성해야겠네요. ㅎ
S 큰바구  
정말 재미있는 영화 감상평입니다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비유적으로 표현된 권총과 조개가 보통사람들은 이 영화를 본다면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하고 보지않을까 생각이 듭니다만.ㅎㅎ
은근 이 영화를 보고 싶어지네요.ㅎㅎㅎ
하스미님 소설이나 영화 시나리오 한편 멋지게 쓰셔도 될듯 싶은데요... "기생충" 같은 영화시나리오 !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이 직겁 시나리오 쓴겁니까? ㅎㅎ 별거 다 물어봅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니 오히려 감사합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은 최고의 스토리 텔러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