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영화의 포스터를 비교해보세요.

영화이야기

두 영화의 포스터를 비교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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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씨네스트 게시판에 리처드 플레이셔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더니 토머스 모어님이 <만딩고> 자막을 올려주셨습니다.

이 영화는 국내 개봉 된 리처드 플레이셔 감독의 영화 중 <코난>, <레드 소냐>와 더불어 잘 알려진 영화지요.


<만딩고>의 원작은 1957년, 당시 70세 카일 언스토트가 처음 쓴 소설입니다.

1830년대 앨라배마주의 (가상의 지명인) 팰콘허스트에서 흑인 노예를 교배(?)를 시켜 매매하는 맥스웰 가문에서 전개되는 다른 인종간의 섹스, 섀도매조키즘, 근친상간, 영아 살해 등이 이 소설의 내용입니다.

센세이셔널한 묘사로 이어지는 선정적 소설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시리즈화 되어서 <드럼>, <팰콘허스트>와 같은 작품이 나왔지요.그 중 <만딩고>와 <드럼>은 영화로 만들어집니다(세편의 소설은 모두 국내에 번역되었지만 지금은 구할 수가 없습니다. <팰콘허스트>는 영화평론가 정영일씨의 번역입니다).


재미난 것은 카일 언스토트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가렛 미첼과 대척점에 있다는 점입니다.

언스토트가 1887년생, 마가렛 미첼이 1900년생이니 언스토트가 세 살 많습니다.

언스토트가 미국 중서부의 일리노이주 태생이지만 소설의 무대가 미국 남동부의 앨라배마주이듯이 미첼의 소설 속 공간 또한 남동부의 조지아 주 아틀랜타입니다. 그녀가 태어나 자란 곳이기도 하죠.

두 사람 다 첫 소설로 돌풍을 일으켰다는 점도 공통점입니다.


하지만 1936년에 발표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남부인인 작가의 한계가 그대로 드러난 작품입니다.

남부 대농장주의 귀족적 생활을 낭만적으로 묘사한 이 작품은 노스탤지어에 빠져 정작 그 시기의 등장 인물들의 생활이 노예 착취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점을 간과하고 있지요.



감독 리처드 플레이셔는 백인 중심주의에 빠져 있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정면 공격하고 있습니다.

영화 포스터를 보면 <만딩고>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패러디하고 있음을 쉽게 눈치 챌 수 있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애틀란타의 화재를 배경으로 스칼렛 오하라와 레드 버틀러가 껴안고 있다면, <만딩고> 역시 화염과 같은 붉은 색을 배경으로 인종이 다른 두 커플이 포옹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하단부는 노예를 린치하는 장면을 넣어서 노예제도를 비판하고 있지요.

이런 부분을 알고 보시면 더 재밌게 영화를 감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직 안보신 분들은 <만딩고>의 터프한 매력을 느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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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Comments
7 Harrum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대비네요.
간단한 설명 감사합니다.
만딩고 자막이 올라와서 언제 볼까 시간을 조율하고 있었는데
좀 더 능동적으로 임해야 하겠군요. ㅋㅋㅋㅋ
저도 두 포스터가 교차되는 느낌이 많았는데
올려 주셨네요..^^
S 암수  
좋은 글 감사합니다...
S umma55  
<만딩고>를 보게 하시는군요.^^ 감사합니다.
이 글의 목적은 거기에 있습니다. 씨네스트에 올려져 있는 영화 활용 말입니다^^
정말 좋은 비교글 잘 읽었습니다.
만딩고 보고싶네요^^*
S 암수  
제임스 메이슨으로 대표되는 그당시 부리는자들은 아무 죄의식이나 연민도 없이 흑인들을 자신의 부를 늘리기 위한 생산도구로 여기고... 그의 아들은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종국에는 그의 아버지와 다를바없음을 보여주고..... 흑인 노예들 중에 걔중 깨어있는 자들은 봉기를 꿈꾸고..백인에 항거하고....
이 영화는...백인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일단 영화적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무수한 웨스턴 영화에서 인디언들을 백인 정복자들의 피해자들로서 자연을 사랑하는 순수한 사람들로 표현하고 있는 영화가 거의 드문 것처럼
숨기고 싶은 과거의 백인들의 역사를 까발리기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만딩고>는 세계적인 대 히트를 기록해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비평적으로는 호된 비난을 받았으니까요.
당시 <시카코 선 타임즈>에서 영화평을 쓰고 있었던 로저 이버트는 "이것은 인종차별적인 쓰레기"라고 평가하면서 별점을 0점을 줬습니다.
레너드 마틴도 "돈을 노리고 만든 쓰레기", <뉴욕타임즈>의 빈센트 켄비도 "최악의 영화", "한마디로 하등품"이라는 등 비평가들은 <만딩고>에 린치를 가했습니다.
비평가들이 <만딩고>를 집단 구타를 한 그 다음해인 1976년 흑인 작가 알렉스 헤일리가 자신의 선조들의 일화를 더듬어 쓴 <뿌리>가 출간되고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서아.프리카 만딩카족의 젊은이 쿤타 킨테가 납치되어 미국에서 노예가 되고 그 딸은 백인과 아이를 낳게 되는 연대기를 그린 작품이지요.
<뿌리>는 바로 TV 미니시리즈로 만들어지고 그 작품은 국민적 프로그램이 됩니다. 한마디로 <뿌리>는 <만딩고>의 소프트 버전으로 비평적으로 엄청난 찬사를 받았지요.
거기에는 Political Correctness, 즉 정치적 올바름으로 추켜세워진 면이 있습니다. 게다가 영화 내용도 영웅과 선한 인물이 다수 등장하여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죠.
하지만 이런 내용은 리처드 플레이셔의 영화 세계와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죠.
플레이셔는 무모하리만치 저돌적으로 백인들이 저지른 살육의 역사를 정면에서 비판하는 전략을 택합니다.
그래서 <뿌리>가 학교에서 가정에서 친근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데에는 '쓰레기'라는 비평적 혹평을 받으며 견뎌냈던 <만딩고>라는 선구적인 작품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아마 진정한 'B급 영화 정신'이라 할 수 있겠지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기가 맥힌 영화네요~``
저기.. 올리신 글의 취지는 좋은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너무 저평가 하시는 것 아닌가요?
바람과 함께..는 시대에 맞게 변화되어 가는 남부인들의 삶과 한 여성(스칼렛)의 성장과 자립에 관한 내용이잖아요
때에 따라서는 인종차별적인 소설(영화)라고도 하던데 작품의 주제 자체가 다른걸요
리얼리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낭만주의적인 경향이 강하지 노예착취를 고발하는 그런 작품은 아니라구요
말씀하신 것 처럼 알렉스 헤일리의 뿌리는 그런 점을 최대한 순화시켰기 때문에(한쪽을 비판하기 보다는
자신의 선조를 찾아가는 역사의 기록에 가깝죠)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이겠구요
바람과 함께..는 영화도 인플레이션 감안하면 아직도(1939년작인데) 제일 많은 수익을 기록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남부인의 한계로만 보기에는 좀.. 제가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라 속이 상해서 몇자 적어봅니다 ㅠ.ㅠ
아.. 만딩고는 보지 않았습니다 재미있는 고전영화가 많은 것 같네요^^
저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영화적 완성도 면에서 뛰어나다고 봅니다. <만딩고>보다 훨씬 잘 만든 영화지요.
본문에도 <만딩고>의 원작이 선정적이다고 언급했듯이 책도 <바람과...>가 <만딩고> 보다 문학적 가치가 있습니다.
<만딩고>는 굳이 분류하면 potboiler 소설, 즉 불쏘시개로 사용할 정도의 3류 소설에 해당할 작품이지요.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람과...>에서의 시대적 아픔과 무관한 낭만적 분위기(역사적 진공상태)가 그 소설/영화의 의도와 별개로 상징 조작을 해왔다는 점입니다.
리처드  플레이셔 감독은 <만딩고>를 통해 이 부분을 고발하고 싶었고 그의 의도가 통해서 인종차별 영화와 TV 시리즈가 본격적으로 나오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