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부산국제영화제 스누피가 선택한 영화 베스트 10

영화이야기

2019 부산국제영화제 스누피가 선택한 영화 베스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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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이 아니라 '선택'입니다. 출품작 300여 편 중에 겨우 서른두(32) 편 봤을 뿐이고요. 순위가 무슨 의미가 있고 기껏 10편 추린 것이 무어 그리 대단한 것이겠습니까. 영화제에 참석해서 신나게 영화를 본 열흘의 시간을 그저 제 나름대로 정리해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시작했습니다. 수상작 중 두 편을 보고 서울로 올라오던 영화제 마지막 날부터 꼬박 닷새 동안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영화가 내게 흔적을 남겼는가, 처음 부산에 내려갈 때부터 품고 갔던, '영화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떤 영화가 좋은 영화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리스트를 뽑아 봅니다. 늘 그렇지만, 리스트를 뽑는 일은 즐겁고도 괴롭습니다. 그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기쁨과 재미의 총량에 순위를 매기고 목록으로 만들어 보았으니, 부디, 타인의 목록을 엿보는 재미를 즐기시길! ㅎㅎ

2019 부산국제영화제 베스트 10

10. 어느 영화감독의 고군분투기ㅣ2019ㅣ까오 핀 촨ㅣ대만

영화 보기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게 해준 영화. 영화 보는 내내 박장대소, 그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도 전에 환호와 박수가 터져 나왔던 영화 세 편 중 한 편(나머지 두 편은 <결혼 이야기>, <증인>). 신파, 싼마이, 개연성이고 나발이고 닥치고 거침없이 달리는 쾌감 가운데 주성치의 향기가 났다. 진창에서 꽃 피는 연꽃 같은 카타르시스. 두목(용소화)의 연기력과 순정에 영광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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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디아파종ㅣ2019ㅣ하메드 테라니ㅣ이란

불의의 사고로 딸을 잃은 50대 싱글맘 라아나의 섬세한 감정 묘사 때문에 감독이나 작가 중 한 명은 당연히 여성일 것이라는 예단과 편견을 깨뜨리고 두 명의 남성이 GV에 나타난 것이 이 영화 최고의 반전. 마지막 장면의 열린 결말을 용서로 독해하면 곤란하다는 감독의 변도 일리가 있지만, <디아파종>의 핵심은 제목 '소리 굽쇠'처럼 끝까지 진동하는 캐릭터의 흔들림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자기 복제라고 볼 수 있는 중동 지역 여성들의 사회·문화적 억압이라는 소재를 관습법이라는 다른 관점에서 신선하게 풀어냈다. <디아파종>은 무슬림 사회 속 여성의 인권 문제가 여전히 논쟁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똑똑하게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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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모성ㅣ2019ㅣ마우라 델페로ㅣ아르헨티나

뻔해 보이는 소재(모성)를 다루는 초보 감독(<모성>이 데뷔작)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우직하고 꼼꼼한 현장 취재(성당의 미혼모 보육 시설에서 오랜 시간 자원봉사자로 일함)를 토대로 리얼리즘의 세계를 완벽하게 구현하지만, 현장성에 매몰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종교적 사명과 인간적 모성 사이의 간극에 웅숭깊은 질문을 던져 파문을 일으킨다. 모성을 엄마의 관점(생모 루 vs 수녀/성녀 파올라)이 아니라 수혜자인 아이(니나)의 입장에서 풀어나간 점, 인간은 늘 실수를 하고 불완전하지만 '미혼모의 모성도 성장통을 겪으며 조금씩 성장해 가는 (가변성의) 생물이다'라는 감독의 관점이 이 영화의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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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리베르떼ㅣ2019ㅣ알베르트 세라ㅣ프랑스

리베르떼는 길고 긴 악몽 같았다. 모멸감, 치욕, 호기심과 관음의 욕망이 뒤섞인 광란의 밤. 절정도 없고 파국도 없는, 오직 한계치까지 달려가는 쾌락의 절정만이 집요하게 서술될 뿐. 수간(獸姦)만 빼고,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성적 판타지가 망라된다. 스탠리 큐브릭보다 지독한 인간은 처음 보았다. 그 집요함이 이 영화를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품으로 만들었을 것이고, 도발적 표현과 주제를 구현하는 방식이 몰고 온 시각적 충격(영화는 흡사 4D처럼 느껴졌다!)만으로도 이 영화를 주목하기에 충분하다. 360도의 완벽한, 관음의 파노라마. 주체로서의 시선/시점에 집중하면서(‘본다는 것’은 권력이다) 그 주체가 시선의 폭력 때문에 순식간에 대상으로 전락하는 반전-재반전의 카오스. 정치적 포르노그래피 동시 상영관. <리베르떼>를 보고 다시 한번 깨닫는다. 세상에 나쁜 영화는 없다. 내 취향과 맞지 않는 영화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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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책-종이-가위ㅣ2019ㅣ히로세 나나코ㅣ일본

말/글과 종이의 지독한 연애담. 글/말의 몸으로서 종이책의 물성에 대한 담담하고 단호한 연애편지. 히로세 나나코의 다큐멘터리에는 표정이 있다. 전자책으로 대표되는 사이버 매트릭스의 시대, 책 표지 장인 기쿠치 노부유키는 유령 같은 말의 덩어리에 종이의 몸을 만들어 입혀준다. 작가의 글과 말을 종이의 촉감/질감을 통해 느끼는 것은 몹시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전자책으로는 절대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없을 거라는 히로세 나나코 감독의 발화는 의미심장하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비록 짝사랑에 그칠지라도 한계가 없는 말이 책의 정장을 통해 몸을 얻는 것처럼, 기쿠치 노부유키의 책 표지 디자인과 그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책의 이야기들이 히로세 나나코의 카메라를 만나 이미지와 이야기의 물성(종이책의 질감과 같은)을 획득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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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ㅣ2019ㅣ고레에다 히로카즈ㅣ프랑스, 일본

가족 이야기의 외피에 인간의 다양한 진실을 담는 고레에다 스타일은 더욱 견고해졌다. 자기 복제의 굴레 안에서 예의 그 날카로움은 조금 무뎌지고 돌멩이 같던 단단함은 물러졌지만, 겹겹의 파이처럼 복잡한 감정선의 깊이를 숨기고 있는 고레에다 감독의 스펙트럼은 여전히 유효하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서 이제껏 보지 못했던 까뜨린느 드뇌브와 줄리엣 비노쉬를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 처음에는 서양판 키키 키린 캐릭터를 연기한 까뜨린느 드뇌브의 감정선이 쉽게 붙지 않아 버석거렸지만, 극 종반 나도 모르게 파비안느와 뤼미에르(줄리엣 비노쉬)에 감정이입해 눈물을 흘리는 나를 발견하고 '역시, 고레에다!' 하고 무릎을 쳤다. 그 장면에서 왜 눈물을 흘렸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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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아저씨 x 아저씨ㅣ2019ㅣ레이 영ㅣ홍콩

이야기의 층위는 깊고 갈등의 속살은 녹록찮다. 배우들 연기는 미쳤고 촉촉이 젖어드는 인생의 달콤한 쓴맛에 그들의 사랑을 지켜보는 마음이 아찔하다. 자신이 되고 싶었지만 끝내 자신이 되는 것을 포기했던 두 사랑/사람의 이야기. 무엇보다 훌륭한 이 영화의 덕목은 그 모든 감정들이 여울목처럼 소용돌이치고 있는데도 전혀 부산스럽지 않다는 것. 마음에 점 하나를 가만히 찍게 되는 영화. 노년의 남성, 동성애, 가족, 다 필요 없다. <아저씨 X 아저씨>는 그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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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파이어 윌 컴ㅣ2018ㅣ올리비에 락스ㅣ프랑스, 스페인

조용하고 강렬하다. 이 두 가지 충돌하는 테마가 강렬하게 소용돌이치며 완벽하게 한 덩어리가 되는 영화적 놀라움. 날은 세운 양가적 진실은 파국을 향해 치달으며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자연과 문명 사이에서 방황하는 보잘것없는 인간들의 근원적 질문과 갈등이 극의 절정에서 장렬하게 산화한다. 불완전 연소된 진실의 무게만이 침묵 속에 남겨진다. 극 막바지 산불 장면은 얼굴과 표정을 가진 또 한 명의 주연 배우로 연기한다. <지옥의 묵시록>의 네이팜탄 화염 장면이 떠오르는 산불의 이미지는 심판의 불지옥이라기보다 '통과제의'로서의 연옥(煉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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