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병을 둘러싼 상상 - 에릭 로메르 감독의 <수집가>(1967)
에릭 로메르의 <수집가>에서 주인공 아드리앙은 약간 젠 척하는 미술품 딜러다.
그는 생트로페에서 여름 휴가 중에도 미국인 고객을 위하여 도자기를 전달할 계획이다.
아드리앙이 고객에게 전달하려는 도자기는 10세기 송나라 때 만들어진 꽃병으로 코끼리 손잡이가 인상적이다.
아이데가 옆에 놓아둔 다른 도자기에 더 흥미를 보이자 아드리앙은 선뜻 선물로 준다.
그것은 끼워팔기 형식으로 받은 것이라 값어치가 없는 것이라면서.
마치 끼워팔기로 도자기를 입수한 것처럼 아이데를 거래하는 느낌이다.
느끼한 중년 고객 샘은 아드리앙의 그런 거래에 만족감을 드러낸다.
샘의 집에 세 사람은 함께 방문을 하고 아드리앙은 구실을 대고 집을 나선다.
다음 날 아드리앙이 샘의 집에 가자 아이데와 샘은 가까운 관계가 되어있다.
샘의 집에서 아이데는 장난을 치다가 꽃병을 깨뜨리고 화가 난 샘이 그녀에게 손찌검을 하는 지경에 이른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드리앙은 깨진 도자기에서 코리리 손잡이 두 개를 탁자에 올려 놓는다.
영화에서 가장 큰 사건인 이 씬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점이 있다.
아이데는 우연이 아니라 분명 고의로 꽃병을 깨뜨린다.
이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먼저 아이데는 자신을 서비스 물품이 아니라는 것을 두 남자에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을 한다면 아이데가 입고 있는 옷의 색깔과 꽃병의 색깔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화병의 코끼리는 중국에 존재하지 않는 동물이다.
고대에는 코끼리가 중국에 있었지만 기후 변화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훗날 사람들이 코끼리의 뼈를 보고 코끼리의 모습을 추측한데서 '상상(想像)'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아드리앙을 비롯한 영화 속의 남자들은 아이데를 '남자 수집가'로 상상을 한다(이 경우 망상에 더 가깝다).
아이데는 꽃병을 깨뜨림으로써 망상에 빠진 남자들에게 경고를 한다.
나는 남자 수집가가 아니라 '삶에 구애를 받지 않고 무언가를 찾는 사람'이라고.
꽃병을 깬 뒤 아드리앙과 대화를 하는 아이데의 모습을 보라.
거울 앞의 그녀와 거울 속의 그녀는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얼마나 다채로운가!
그리고 거울의 3분할은 중세 종교화로 자주 사용된 삼면화를 생각나게 한다.
이 장면에서 그 전까지 천둥벌거숭이처럼 보였던 아이데가 성녀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는 오즈 야스지로의 <늦봄>, 샹탈 아커만의 <잔느 딜망>과 더불어 꽃병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의 꽃병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말을 거는가.
기회가 된다면 보도록 할게요.
물론 수집가(1967)도..................................... 읭?
La Collectionneuse(1967)........... 이거 번역이 [수집가]가 맞는데 ㅋㅋㅋㅋㅋㅋ
[여성 수집가]라고 제목이 나와있는 건 뭘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갑자기 빵 터졌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성 수집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영화 이미지까지 완전히 변질시켜버리는 훌륭한 제목임. ㅋㅋ
띨띨한 한글제목 짓는 마이다스들이 열일하는군요.
역시 사람은 생긴대로 놉니다.
암튼 훌룡한 분석이십니다.
저는, 읽어보니,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꽃병이 전달되는 것이 흥미롭네요
(미국의 "누구"에게 전달되는지)
아시다시피, 베트남과 프/미의 제국주의 역사를 볼 때,
이 영화가 67년 영화이고, 1년후 68 -마오, 체 등-,
압권은 꽃병 손잡이인 "코끼리상 두 개(=베트남 남/북)"의 꽃병과 베트남전.
(바로 베트남전에 "꽃병"을 던지자는 얘기인 것이죠)
그리고 이를 깨뜨리는 아이데, 3분할된 거울 속 아이데는 68의 다양한 모습이라 생각해도 될 듯 합니다.
이리보면, 저는 로메르 영화는 한 편도 안봤지만,
이 영화 "수집가"가 제국주의를 비판한 프랑스 젊은이들의 시대정신과 정치참여를 고취하는 영화가 아닐까.....라는 공상이 들었네요-_-;;
영화제목을 <꽃병>이라해도 다양한 해석이 나오겠네요.
멋진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