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베스터 스탤론 A to Z

영화이야기

실베스터 스탤론 A to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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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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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에 태어났으니 올해로 66세. 쾌적한 실버 타운이나 알아볼 나이일 수도 있지만, 실베스터 스탤론은 진정 나이를 잊은 듯 여전히 탄탄한 근육질을 내세우며 액션의 혼을 불태우고 있다. '록키 발보아'와 '존 람보'라는, 그에게 영광이자 족쇄와도 같았던 캐릭터와 결별한 그가 새롭게 맞아들인 이름은 [익스펜더블] 시리즈의 바니 로스. 용병들을 이끌며 미션을 수행하는 그의 모습은, 왕년의 주먹들을 규합한 보스이자 살아 있는 액션의 전설이다.


글 l 김형석(영화 저널리스트)  구성 |  네이버 영화

실베스터 스탤론 A to Z
Awards 어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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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록키]가 작품상을 수상했을 때. 2. 시상식의 특별 게스트였던 무하마드 알리와 스탤론.
그는 아마도 시상식에서 가장 극단적인 명암을 경험한 배우일 것이다. 단역을 전전하며 고생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쓴 시나리오를 토대로 [록키](1976)의 주인공이 된 그는 197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과 각본상 부문 후보에 오르며, 영화 속 캐릭터처럼 '아메리칸 드림'의 주인공이 되었다(남우주연상과 각본상 부문에 동시에 오른 경우는, [위대한 독재자](1940)의 채플린, [시민 케인](1941)의 오슨 웰즈에 이어 오스카 역사상 세 번째였다). 수상하진 못했지만, [록키]가 작품상을 수상하며 그는 단상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최악의 영화와 배우를 선정하는 래지 어워즈에서 더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1985년 시상식에서, 돌리 파튼과 공연한 [귀향](1984)으로 최악의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1986년엔 [람보 2](1985)와 [록키 4](1985)로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을 휩쓸었고, 이후 1997년 시상식까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후보에 오르며 [람보 3](1988) [엄마는 해결사](1992)로 남우주연상을 가져갔으며, [스페셜리스트](1994)로는 샤론 스톤과 함께 최악의 커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급기야는 1990년에 '지난 10년 동안 최악의 남자 배우'로, 2000년에 '20세기 최악의 남자 배우'로 선정되었다. 아마 래지 어워즈는 스탤론이라는 존재가 없었으면 지탱하지 못했을 듯. [익스펜더블](2010) 때도 최악의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이쯤 되면… 스탤론이 시상식에 한 번쯤은 직접 왕림할 때가 된 건 아닐지…. 아마도 어김없이 그의 이름이 거론될 내년 시상식을 기다려 본다.

Banana [바나나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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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나나 공화국]의 스탤론(왼쪽). 2. [택시 3]에 카메오 출연한 스탤론.
1970년대 초반, 스탤론은 여러 영화에서 단역을 전전하며 20대 후반을 보낸다. 그 중 대표작(?)이 바로 우디 앨런 감독의 [바나나 공화국](1971). 뉴욕 지하철의 건달로 등장하는데, 이후 [록키]로 스타가 되자 일부 극장에선 [실베스터 스탤론의 바나나 공화국]으로 재개봉되기도 했다. 제인 폰다가 첫 번째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콜걸](1971)에선 디스코 클럽에서 춤 추는 사람으로 등장하고, [러버스 앤 어더 스트레인저 Lovers and Other Strangers](1970)에선 결혼식 장면의 하객 중 한 명이었다. 잭 레먼과 앤 밴크로프트가 공연했던 [2번가의 죄수 The Prisoner of Second Avenue](1974)에선 잭 레먼의 지갑을 훔치는 역할로, 꽤 비중 있는 단역이 된다. 그리고 논란의 영화였던 [맨딩고](1975)에선 '군중 속의 젊은이'로 등장하지만 편집실에서 삭제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유명해진 후 카메오로 등장한 영화는, 직접 연출했던 [스테잉 얼라이브](1983)의 '거리에 서 있는 사람', [택시 3](2003)의 '공항 가는 손님' 등이 있다.

Cliffhanger [클리프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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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클리프행어]의 한 장면. 2. 현장의 스탤론과 레니 할린 감독.
1988년에 [람보 3], 1990년에 [록키 5]를 내놓으며, 스탤론은 자신을 스타덤에 올렸던 존 람보아 록키 발보아라는 캐릭터와 결별한다. 이후 그는 코미디 장르에 도전해 [오스카](1991)와 [엄마는 해결사](1992) 등을 내놓았지만, 대중은 차갑게 외면했다. 이때 그를 구원한 영화가 바로 [클리프행어](1993). [다이 하드 2](1990)로 급부상하던 레니 할린과의 작품으로, 스탤론은 이 영화를 통해 액션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게 된다.

총격전도 카 체이스도 없는, 오로지 줄 하나에 매달린 채 거대한 산악 지역에서 펼쳐지는 [클리프행어]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테러리스트에 맞서 사람들을 구하고 결국 악을 응징하는 산악 구조원 게이브 워커. 고소공포증이 있는 스탤론에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역할이었는데, 레니 할린 감독이 먼저 줄에 매달리는 시범을 보인 후 어쩔 수 없이(!) 액션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설정된 배경은 콜로라도 산맥이지만 실제 촬영지는 흡사한 경관을 지닌 이탈리아의 코르티나 담페초. 제작사인 캐롤코는 원래 허리케인에 맞서 테러리스트와 싸우는 해양구조원의 이야기를 구상했다고 한다.

Demolition Man [데몰리션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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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몰리션 맨]의 스탤론. 2. [저지 드레드]의 스탤론.
[클리프행어]로 다시 반등세를 탄 스탤론은 SF 장르에 도전한다. 그 시작은 [데몰리션 맨](1993). 거친 경찰 존 스타르탄으로 등장하는 스탤론은 사이먼 피닉스(웨슬리 스나입스)라는 살인마를 검거하는 과정에서 30명의 무고한 인명을 해치게 되고, 스파르탄과 피닉스는 냉동 감옥에 갇혀 2032년에 풀려난다. 예전부터 스탤론과 작업하고 싶었던 제작자 조엘 실버가, 두 남자가 대결을 펼치는 '안티 버디 무비'로 기획한 작품. 스탤론은 악당 역을 성룡이 맡길 바랐지만 성사되진 못했다.

이 영화의 소박한 흥행 후 다시 한 번 도전한 SF가 바로 [저지 드레드](1995).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으로, 2139년이 배경이다. 그는 도시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는 강력한 심판자 조셉 드레드 역을 맡았는데, 살인 누명을 쓰고 추방된다. 이 영화는 9,000만 달러라는 제작비의 절반도 안 되는 3,500만 달러(북미) 정도의 수익을 거두었는데, 어쩌면 현장에서 대니 캐넌 감독과 스탤론의 대립이 그 원인일지도. 결말 부분은 감독의 의사와 상관 없이 거의 스탤론이 원하는 대로 편집되었다. 원래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도 고려되었던 역할. 코엔 형제에게 연출 제의가 갔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Expendables, The [익스펜더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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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익스펜더블] 현장의 스탤론. 2. [익스펜더블] 시사회장의 슈왈츠제네거와 윌리스와 스탤론.
2000년 이후 스탤론은 긴 슬럼프에 들어갔다. [겟 카터](2000)를 시작으로, [클리프행어]의 레니 할린과 다시 만났던 [드리븐](2001), 우여곡절 많았던 [디-톡스](2002), 북미 지역에선 제대로 개봉도 못 했던 [어벤징 안젤로](2002)와 [쉐이드](2004)…. 하지만 [록키 발보아](2006)로 재기한 그는 [람보 4: 라스트 블러드](2008)로 아직 액션의 피가 식지 않았음을 증명했고, [익스펜더블](2010)로 액션 마니아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준다.

스탤론과 슈왈츠제네거와 브루스 윌리스와 돌프 룬드그렌과 이연걸과 미키 루크가 한 영화에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게 했던 이 영화는, [황야의 7인](1960) [특공대작전](1967) [와일드 번치](1969) 같은 할리우드 마초 액션의 계보를 잇는 작품. 마치 왕년의 경쟁자들이 동문회에서 모인 듯한 느낌을 주는 작품으로, 요즘 액션 대세인 제이슨 스테이덤이 왜소해 보일 정도로 엄청난 카리스마들이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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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익스펜더블] 현장의 스탤론과 돌프 룬드그렌. [록키 4] 이후 25년 만의 만남이다. 2, 3. [익스펜더블 2]에 새롭게 합류한 척 노리스와 장 클로드 반담.
올해 선보이는 [익스펜더블 2]는 장 클로드 반담과 척 노리스가 가세하고, 전작에선 카메오 수준이었던 슈왈츠제네거와 윌리스의 비중이 커지면서 거의 완벽한 진용을 갖춘 상태. 1편에선 직접 연출했던 스탤론은 [콘 에어](1997)와 [툼 레이더](2001)의 사이먼 웨스트 감독에게 메가폰을 넘겼다. "대단한 액션 히어로를 만드는 건 근육이 아니다. 엄청나게 뛰어난 운동 신경도 아니다. 나는 관객과 관련된 그 무엇인가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만질 수 있어야 하고, 다가갈 수도 있고, 실제 존재해야만 한다. 혹시 조금 결점이 있더라도 말이다. 액션 히어로는 관객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관객이 그를 응원해야 한다. 나는 관객이 정신적으로 캐릭터를 지지하기에 액션 스타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스탤론의 액션 철학이다.

[익스펜더블] 시리즈에 참여하는 것은 항상 시간에 쫓기고, 쉴 시간도 없고, [람보] 시리즈 세 편을 만드는 것보다 더 힘든, 아주 '잔인한' 작업이라는 스탤론. 한편 [익스펜더블](2010)이 개봉 첫 주 1위에 오름으로써, 그는 197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다섯 번의 디케이드(10년간) 연속으로 박스오피스 정상을 경험한 유일한 배우가 되었다. 그가 얼마나 장수하는 흥행 배우인지를 증명하는 기록인 셈. 한편 3편엔 니콜러스 케이지가 출연한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가운데, 팬들은 스티븐 시걸의 합류를 강하게 원하고 있다.

F.I.S.T [투쟁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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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투쟁의 날들]의 장면들.
[록키]로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된 실베스터 스탤론의 차기작은, 의외로 매우 리얼한 톤의 드라마였다. 노조 지도자였던 지미 호파의 삶을 느슨하게 각색한 듯한 영화 [투쟁의 날들](1978)은 명감독 노먼 주이슨이 연출한 작품. 빈민가 출신의 노동자가 노조 지도자가 되고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권력과 결탁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후 [원초적 본능](1992)으로 할리우드 1급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조 에스처하스의 첫 시나리오를 토대로 했는데, [록키]로 "영화는 반드시 해피엔딩이어야 한다"는 철학(?)을 깨달은 스탤론은 무자비할 정도로 시나리오를 고쳤고, 결국은 자막에 공동 시나리오로 이름이 오를 지경에 이른다. 엔딩을 놓고 스탤론과 주이슨 감독과 작가인 에스처하스는 격론을 벌였고, 결국 감독이 이겨서 간신히 해피엔딩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Get Carter [겟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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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겟 카터]의 스탤론. 2. [겟 카터] 이전, 스탤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캅 랜드]. 하지만 스탤론은 다시 액션의 세계로 돌아왔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스탤론이 대중에게 조금씩 멀어진 건 1990년대 중반부터였다. [클리프행어]의 성공 이후 [데몰리션 맨]과 [스페셜리스트](1994)로 흥행세를 이어가나 싶었지만, [저지 드레드]의 실패 이후 [어쌔신](1995)과 [데이라잇](1996)은 계속 관객의 외면을 받게 되었다. 위안이 있다면 [캅랜드](1997)였다. 18킬로그램이나 체중을 불리며, 로버트 드 니로나 하비 케이틀 같은 연기파 배우들 사이에서 열연을 펼쳤던 그는 스톡홀름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하지만 그는 다시 몸을 만들어 액션의 세계로 돌아왔고 2000년대를 [겟 카터](2000)로 시작한다.

1971년에 마이클 케인이 주연을 맡았던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겟 카터]에서 스탤론이 맡은 역은 무자비한 해결사 잭 카터, 그는 동생의 죽음에 얽힌 의혹을 밝혀나가면서 불법 포르노 사업과의 연관성을 알게 되고, 복수극을 시작한다. "내게 가장 흥미 있는 영웅의 모습은, 정해진 대로 영웅적인 행동을 하는 역이 아니라 더 높은 이상을 위해 영웅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는 스탤론은 [겟 카터]를 "고독한 인간의 구원"에 대한 영화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더 길어질 슬럼프의 신호탄이었고, [록키 발보아](2006)까지 그는 50대 후반을 침체기로 보내야 했다.

Hard body [하드 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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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전 제퍼드의 [하드 바디]. 2. 레이건을 희화한 이미지. 3. 백악관에서 레이건과 만난 스탤론. 왼쪽부터 영부인 낸시, 레이건 대통령, 당시 아내였던 브리지트 닐슨 그리고 스탤론.
레이건 시대에 할리우드가 재현한 남성상을 연구한 [하드 바디](한국에선 '동문선'에서 출간)라는 책에서 저자인 수전 제퍼즈는 실베스터 스탤론을, 특히 '존 람보'라는 캐릭터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레이건에게 로널드 레이건과 람보의 합성어인 '론보'(Ronbo)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람보의 행동주의가 '강한 미국'을 내세우는 레이건의 외교 정책과 일맥상통하기 때문. 레바논에 억류되었던 미국인 인질들이 풀려나자 "다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면 람보를 보내겠다"라는 조크를 던진 건 유명하다.

수전 제퍼드는 [람보](1982)가 1970년대 카터 행정부의 나약했던 시기가 가져온 후유증을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여기서 스탤론의 화강암처럼 단단한 '하드 바디'는 새로운 시대의 남성상을 제시하며, [람보 2](1985)에 오면 레이건이라는 완벽한 '마초 대통령'과 궤를 같이한다. 전쟁 포로들을 구하는 람보의 모습은, 그라나다 침공을 결정한 레이건과 어쩌면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았던 것. 이후 '하드 바디'의 이미지는 부시 행정부까지, [다이 하드] 시리즈의 존 맥클레인 형사나 [로보캅] 시리즈의 머피 등으로 이어진다.

Idol 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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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스티브 리브스의 모습. 3. [헤라클레스]의 스티브 리브스.
스탤론이 근육질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건 그가 12세 때 봤던 영화 한 편 때문이었다. 바로 [헤라클레스](1958). 주인공을 맡은 스티브 리브스는 전설의 보디빌더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나 헐크로 유명한 루 페리노 같은 보디빌더 출신 연기자들이 모두 숭배하는 인물이다. 이 영화 후 스탤론은 몸 만들기를 시작했고(마침 그의 어머니는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리브스가 나오는 영화는 빠짐없이 보면서 배우의 꿈을 키웠다. 이후 연기자 쪽으로 진로를 정한 후엔, 말론 브란도가 그의 우상이 되었다.

John Rambo 존 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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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람보]의 스탤론. 2. [람보 2]의 스탤론.
록키 발보아와 함께 스탤론을 대표하는 캐릭터는 단연 [람보] 시리즈의 존 람보다. 1982년에 첫 선을 보인 존 람보는 베트남 참전 군인. 1편에선 록키 산맥에서 경찰과 대립했다면, 2편에선 포로 수용소에 잠입해 그들을 구출하며, 그 방법론은 더욱 잔인해졌다. 1988년에 나온 3편에선 자신의 친구인 트로트먼 대령(리처드 트레나)을 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날아가 그곳을 침공한 소련군과 싸우게 되는데,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아마도 [람보 3]은 마지막 냉전 영화가 아닐까 싶다.

이젠 더 이상 싸울 상대가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걸까?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시리즈는 20년 만에 부활하는데, '라스트 블러드'라는 부제를 단 [람보 4](2008)는(1편은 '퍼스트 블러드'였다) 버마 지역에서 선교사들을 구출하는 존 람보를 보여준다. 당시 시사회를 마치고 "다시 20세가 된 것 같다! 관절염이 있긴 하지만…"이라는 소감을 밝힌 스탤론은, 람보와 록키를 매우 흥미롭게 비교하는데, 존 람보가 모닝 커피를 마시기 전의 스탤론이라면, 록키 발보아는 모닝 커피를 마신 후의, 즉 좀 더 차분하게 가라앉은 상태의 스탤론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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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람보 4: 라스트 블러드]의 스탤론. 2.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의 한 장면.
"람보는 나의 이드(id. 무의식)다. 그는 원초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본능을 따른다. 그는 짐승과도 같은 존재다. 나는 그런 야성 때문에 그를 사랑한다. 그리고 존 람보는 잘못된 길로 들어선 정의의 기사와도 같다. 그는 영광스럽게 죽으려 할 뿐,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될 때까지 살거나 가족을 가지겠다는 식의 욕망이 없다. 록키는 반대다. 그는 가족 없인 살 수 없는 존재다. 록키가 '아메리칸 드림'이라면, 람보는 '아메리칸 (프랑켄슈타인의) 몬스터'다."

한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2005)를 만든 가스 제닝스 감독은 2008년에 (원제가 'Son of Rambow'인)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을 내놓았는데, 어른 시절 람보 캐릭터에 열광했던 감독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 그는 "어릴 적 내가 람보에게 매력을 느꼈던 것은, 그가 모든 역경을 딛고 생존했다는 점"이라고 말하는데, 의도하진 않았지만 [람보 4: 라스트 블러드]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되었다. 스탤론도 이 영화를 보았는데, 가스 제닝스 감독에게 매우 즐겁게 보았다며 축하의 말을 보냈다고 한다. 한편 스탤론은 현재 다섯 번째 [람보] 시리즈를 준비중이라고 한다.

Kambakkht Ishq [인크레더블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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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인크레더블 러브]의 스탤론.
인도의 발리우드 영화 팬인 실베스터 스탤론은 급기야 직접 출연까지 마음 먹게 되었으니, 코믹 액션 영화인 [인크레더블 러브](2009)에 자기 자신으로 카메오 출연을 하는 것. 스턴트맨인 주인공과 함께 영화제 시상식 단상에 서면서 등장한 그는, 후반부에 다시 한 번 등장해 잠깐이지만 액션을 선보인다. 한편 이 영화엔 어디서 본 듯한 배우 한 명이 더 등장하는데 바로 [슈퍼맨 리턴즈](2006)의 브랜든 루스다.

Lord's of Flatbush, The [브룩클린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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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브룩클린의 아이들]의 스탤론. 2. 함께 출연한 배우들과 함께.
스탤론이 처음으로 맡은 '역할다운 역할'은 [브룩클린의 아이들](1974)의 스탠리였다. 당시 스탤론은 수백 번의 오디션에서 낙방한 후 차라리 자신이 영화를 만들겠다며 카우보이와 인디언에 대한 [말 Horses]이라는 영화를 기획했지만 성사되지 못한 상태. 거의 배우를 포기하고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던 시기 혹시나 하고 응시했던 오디션을 통해 [브룩클린의 아이들]에 출연하게 되었다. 네 명의 틴에이저들이 몰려다니며 무의미한 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내용인데, 스탤론이 맡은 스탠리 로시엘로라는 캐릭터는 근육질의 멍청이로 [워터프론트](1956)에 나오는 말론 브랜도에 빠져 있다. 1972년에 촬영에 들어간 영화는 5주 만에 제작비 부족으로 중단되었고, 이후 제작비가 마련될 때마다 촬영해 2년 만에 완성되었다.

완성되었지만 창고에서 잠자고 있던 영화는 조지 루카스의 [청춘 낙서](1973)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며 청춘 영화의 붐을 몰고 오자 개봉할 수 있게 되었고, 400만 달러 이상의 짭짤한 수익을 거두었다. 이후 스탤론은 [코작](1975)이나 [폴리스 스토리](1975) 같은 인기 TV 시리즈에 얼굴을 내비쳤고, [알 카포네](1975)와 [죽음의 경주](1975) 같은 영화를 통해 단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Mr. Potato Head 미스터 포테이토 헤드


태어날 때 병원에서의 실수로 턱 부분의 신경을 다쳤고, 그 영향으로 눈이 처지고 언어 장애가 있었던 스탤론에게 학교 생활은 힘겨운 시간이었다. 당시 그의 별명은 미스터 포테이토 헤드. 간단히 번역하면 '바보'였는데, 그는 점점 폭력적인 성향을 띤 아이로 성장했는데 안타까운 건 아버지 프랭크가 너무 엄한 규율 속에서 아들을 대했다는 것. 아버지는 스탤론에게 체벌을 가하기 전에 항상 휘파람을 불곤 했는데, 이것은 그에게 큰 트라우마가 되었고, 스타가 된 후 그가 있는 현장에선 그 누구도 휘파람을 불어선 안 된다는 불문율이 생길 정도였다.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던 스탤론의 유일한 취미는 판타지의 세계에 빠지는 것. 그는 자신이 슈퍼맨이라고 생각했고, 옷 안에 슈퍼맨 복장을 입고 다녔는데, 하루는 그것을 들켜 아이들 앞에서 옷을 벗고 그것을 드러내야 했다. 이것은 그에게 엄청난 수치심을 주었고(그때 11살이었다), 더욱 환상의 세계에 빠진 그는 급기야 우산을 들고 지붕에서 뛰어내리기까지 했다.

전과목 F에 주의력 결핍 판정을 받은 그를 어머니 재키는 클리닉에도 데려가고 종교적 치료도 했지만 전혀 효과는 없었다. 게다가 이 시기 부모의 이혼으로 스탤론은 더욱 큰 상처를 받았고, 16세가 되기 전까지 20군데의 학교를 전전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문제아들을 전문으로 하는 학교에 들어간 그는, '마이크'라는 이름으로 잠시 개명을 한 후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는데 강한 치료 과정을 거친 후 자신감 있는 학생이 되었다고. 이후 어머니 재키는 그를 스위스에 있는 미국인 학교에 보내면서 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는다.

Next projects 차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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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릿 투 더 헤드]의 스탤론. 2. [더 툼]의 슈왈츠제네거와 스탤론.
가장 먼저 만나게 될 그의 차기작은 2013년 개봉 예정인 [불릿 투 더 헤드]. 공동의 적을 위해 경찰과 킬러가 힘을 모은다는 내용으로, 거장 월터 힐의 작품인데, 스탤론은 킬러인 지미 보보 역을 맡았다. [코난 : 암흑의 시대](2012)의 제이슨 모모아가 공연한다. [더 툼](2013)은 현재 후반작업 중으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와 공연한다. 기획중인 작품들 중 가장 궁금한 건 [그루지 매치 Grudge Match]. 피터 시걸 감독의 스포츠 코미디인데, 왕년의 복서들이 출연하는 작품으로 상대역으로는 [성난 황소](1980)의 로버트 드 니로가 거론되고 있다. 만약 성사된다면 세기의 매치가 아닐 수 없다.

[홈프론트 Homefront]는 제이슨 스테이덤과 함께 하는 액션 스릴러. 슈왈츠제네거와 함께 하는 [더 툼]도 그렇고, [익스펜더블]에서 만난 배우들과 점점 새끼 치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범죄 스릴러인 [노 레스트 포 더 위키드 No Rest for the Wicked]도 기획중, 한편 찰슨 브론슨의 [데스 위시](1977) 리메이크 프로젝트도 거론되고 있다. 속편 소식도 들려온다. [익스펜더블 3]이 기획 중으로 니콜러스 케이지를 비롯한 새로운 배우들을 모집 중이며, [람보 5] 이야기도 기획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젊은 시절부터 그를 사로잡았던 에드가 앨런 포에 대한 영화도 기획중.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에게 러브콜을 보냈다곤 하는데, 확정된 사항은 없다.

Onstage 무대 경력


스탤론이 처음으로 연극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스위스의 미국인 학교 시절이었다. 부자와 귀족들만 다니는 학교였지만, 어머니의 뜨거운 교육열로 인해 어렵사리 입학하게 된 스탤론은 그곳에서 보낸 2년 동안 놀라운 학업적 성취를 이루었고(졸업 당시 우등생이었다), 미술과 시의 세계를 접했으며, 셰익스피어와 헤밍웨이의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곳에서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세일즈맨의 죽음] 무대에 서기도 한 그는 미국으로 돌아와 마이애미 대학 연극과에 들어가는데, 스위스에서의 자유로운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당시 미국 연극계는 모두 메소드 연기에 열중하고 있었던 것. 스탤론은 아방가르드 연극에 관심 있었고, 직접 쓴 희곡으로 언더그라운드에서 꽤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대학 생활은 점점 무의미해졌다.

대학을 그만 둔 스탤론은 뉴욕으로 가 오프 브로드웨이에 도전하며 한편으로는 희곡과 시나리오를 썼다. 이때 기회를 잡은 건 피카소의 유일한 희곡을 바탕으로 한 [꼬리 밟힌 욕망 Desire Caught by the Tail] 무대에 섰다. 스탤론이 추구하던 아방가르드적 지향점과 맞는 연극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주목 받는 계기가 되진 못했다.

Party at Kitty and Stud's, The [키티와 스터드의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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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키티와 스터드의 파티]의 스탤론.
뉴욕에서 수많은 잡일들을 하며 살아가던 20대 초반. 스탤론은 1970년대에 한참 붐을 이루던 섹스 필름 산업의 흐름 속에서 소프트코어 포르노 한 편에 출연한다. [키티와 스터드의 파티](1970)라는 영화로 그의 데뷔작인 셈. 세 여자와 두 남자가 진탕 벌이는 섹스 파티가 그 내용으로, 이때 받은 200달러의 개런티는 밀린 방세를 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이후 [록키]로 스탤론이 스타덤에 오르자, 이 영화는 '이탈리아에서 온 종마'(Italian Stallion)라는 제목의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Quotes 실베스터 스탤론 어록

"나는 고전적인 의미의 핸섬한 외모와는 거리가 멀다. 눈은 처졌고, 입은 비뚤어졌으며, 치열도 고르지 않고 목소리는 마피아 같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묘한 조화를 이뤘다."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다. 난 내 나라를 사랑할 뿐이다."

"맘 같아선 람보와 록키 캐릭터를 계속 하고 싶다. 두 캐릭터는 스위치를 끌 수 없는 돈 버는 기계와도 같다."

"아무도 실패를 원하지 않지만, 나는 실패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실패는 인생의 교훈을 준다."

"나는 절대로 우월한 유전자나 장대한 기골을 타고나지 않았다. 나는 사실 지금도 마른 편이다. 난 사람들이 내 몸을 보고, 자신들도 노력하면 좋은 몸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길 바란다."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배우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때 내 연기 영역을 확장하지 못한 점이다. 상업영화나 액션 영화와 함께 인디펜던트 영화나 연기력을 필요로 하는 영화도 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브루스 윌리스는 배워야 할 사람이다."

"모든 상황의 95퍼센트 정도는 여성이 옳다."

"나는 스스로에게 연기를 계속 해야 한다는 압박을 준다. 그런 목표가 없다면, 25개의 크로아상을 먹어치운 후에 맥주를 목에 들이부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난 반드시 죽어야 할 악당들만을 죽여왔다."

"평범한 예술가들은 빌려오지만, 천재들은 훔친다."

Rocky Balboa 록키 발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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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록키]의 장면들.
1975년 무하마드 알리와 당시 무명이었던 척 웨프너의 경기를 본 스탤론은 강한 영감을 얻었다. 그것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고, 아깝게 지긴 했지만 웨프너가 보여준 투혼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3일 만에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시나리오를 본 제작자 어윈 윙클러와 밥 차토프는 큰 관심을 보였다. 유나이티드 아티스츠에서 제작하기로 결정했을 때, 주인공은 제임스 칸이 맡을 예정이었다. 당시 마틴 스코시즈의 [뉴욕 뉴욕](1977)에 돈을 들이붓고 있던 상황에서, [록키]의 예산은 점점 깎이게 되었고 결국 125만 달러라는 돈만 허락되었다.

수많은 배우들의 이름이 오갔으나, 1930년대에 유행했던 복싱 영화엔 아무도 관심 없었다. 결국 스탤론은 2만 달러의 개런티로 주연을 맡게 되었고, 개봉 후 1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흥행을 거두었다. '이탈리아의 종마'로 불리는 록키 발보아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스탤론이라는 배우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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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록키] 이후 30년. [록키 발보아]의 스탤론.
스탤론은 [록키](1976)가 복싱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한 영화라고 말하는데, 당시 서른 살이 되어가던 스탤론은 아무런 비전도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던 시절이었던 것. 아내인 사샤는 첫 아이를 임신 중이었는데, 스탤론은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었고, 그에게 [록키]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쓸모 없는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마지막 기회처럼 여겨졌다. 이후 [록키]는 1979년의 [록키 2], 1982년의 [록키 3], 1985년의 [록키 4]까지 흥행가도를 달렸지만, [록키 5](1990)에서 기대한 것보다 미약한 흥행을 기록한다. 그로부터 16년, "[록키 5]를 너무 못 만든 것 같아서" 다시 도전했다는 6편 [록키 발보아](2006)는 스탤론이 슬럼프를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의 영화 인생에서 또 하나의 출발점이 되었다.

한편 스탤론에게 영감을 주었던 척 웨프너는 스탤론이 자신의 경기에서 모티브를 얻었음에도 수익금을 나누지 않았다며 끊임없는 소송을 걸었는데, "실제 록키로 알려지면서 생긴 수익으로 이미 충분한 금전적 보상을 받은 것 아니냐"는 것이 스탤론의 입장이었지만, [록키 발보아]를 영화화하기 전에 일종의 사전 작업으로 2005년에 합의했다.

Stallone family 스탤론 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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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록키 5]의 실베스터와 세이지. 2. [익스펜더블] 시사회에 참석한 아내 플래빈과 스탤론 그리고 세 딸들.
첫 아내 사샤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이지 스탤론은 [록키 5]에 스탤론의 아들 역으로 데뷔해 이후 감독과 프로듀서로도 활동했다. 어린 시절 자폐 증세를 보였지만 스탤론의 극진한 사랑과 관심으로 극복했던 세이지는, 하지만 안타깝게도 2012년 7월 13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세이지의 동생으로는 시어저 스탤론이 있다.

브리지트 닐슨과의 두 번째 결혼이 씁쓸한 이별로 끝난 후, 현재는 제니퍼 플래빈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중. 소피아 로즈 스탤론, 시스틴 로즈 스탤론, 스칼렛 로즈 스탤론 등 세 딸을 두고 있다. 한편 실베스터 스탤론의 동생인 프랭크 스탤론 주니어는 형의 영화에 종종 작은 역으로 출연했으며, 뮤지션으로 활동 중이다.

Tango & Cash [탱고와 캐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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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탱고와 캐쉬]의 장면들.
복서(록키)와 참전 군인(람보)의 이미지 외에 스탤론이 사랑했던 캐릭터가 있다면 바로 형사. [나이트호크](1981) [코브라](1986) 등의 시도가 있었지만, 아마도 가장 많이 사랑 받았던 형사 캐릭터라면 [탱고와 캐쉬](1989)의 레이먼드 탱고가 아닐까 싶다. 그의 영화들 중 매우 드문 버디 무비인 [탱고와 캐쉬]는, 양복 차림의 럭셔리한 형사 탱고와 캐주얼 복장에 시끌벅적한 형사 가브리엘 캐쉬(커트 러셀)가 한 팀이 되면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형사 액션 영화. [폭주 기관차](1985)로 유명한 러시아 출신의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Unrealized roles 실현되지 못한 캐릭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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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Comments
31 영화여행  
이 사운드 트랙이 유투브에도 풀로 나와 있는데
그걸 분할해서 시디로 구워낫네요 ㅎㅎ
25 썸머와인  
우와..이 많은 자료를 분석하고 편집하고..대단하세요 영화여행님
31 영화여행  
시간날때 올리는거에요 ㅎㅎ
요즘은 활동을 안하지만 원래 제 취미가 음악 블로거였어요 ..
25 썸머와인  
ㅎ ㅑ..멋지십니다
31 영화여행  
별말씀을요..ㅎ
아무튼 감사합니다 와인님~
31 영화여행  
블로그 얘기가 나와 문득 예전 비공개 자료들을 살펴보니 8~90년대 초 빌보드 자료들만 수두룩 하네요~ㅋㅋ
이러니 우리 가이 오라방이 인정(?)해 주는 듯 ㅋ
잊고 있었는데 이젠 이 자료 써먹으면 되긋네..오라방 알비백..
31 영화여행  
오잉..댓글 달린지 알고 들어와 봤더니 추천을 해주시고 가셨군요..
3 정주왕  
잘 봤습니다.원 글이 네이버에 있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눈앞에 없으면 꽝이죠.볼수 있어야 보물입니다.^^영화여행님의 노고에 감사 드립니다.스탤론의 열정이 대단하네요.
31 영화여행  
하기사 묻혀버린 글을 찾아 올리는것도 나쁘진 않네요..^^
정주왕님도 스탤론 팬이신듯..ㅋ
잘 보셨다니 저도 감사합니다..^^
1 햅격  
크리리프행어오와  탱고와캐쉬  또보고 싶네여
31 영화여행  
클리프 행어는 재난영화로서도 높게 평가되는 작품이였죠 ㅎㅎ
이 음악은 지금도 예능프로에서 록키주제가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는 시련극복의 음악이 되었죠..^^